임금의 처소를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 했다. 아홉 겹의 담으로 둘러싸인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란 뜻이다. 하지만 궁중음식은 궐 담 안에 갇히지 않았다. 오는 30일~10월 1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궁중음식, 궐 담을 넘다'(종로구 주최, 궁중음식연구원 주관)는 조선 시대 궁궐과 민간이 음식을 통해 서로 어떻게 교류했는지 보여주는 전통 음식 축제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은 "왕가와 혼인하거나 높은 관직에 앉는 등 왕실과 연을 맺은 사대부가가 궐 안팎 문화 교류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진연(進宴)이나 큰 잔치가 궁에서 열리면 사대부가 사람들이 초청받았지요. 사람마다 각상(各床)을 차려줬고 남은 음식은 가져가게 했어요. 임금이 음식을 하사하기도 했고요." 궁중음식을 먹어본 사대부 가문은 이를 자신들의 음식으로 발전시켰다. 사대부가에서 남긴 요리책이나 구술서를 살펴보면 궁중음식이 어떻게 반가(班家) 음식으로 자리 잡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이 오는 30일부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궁중음식, 궐 담을 넘다’에서 전시할 은행·정과·매작과·사탕·다식 등을 쌓아올려 만든 고임을 보여줬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은 누구?]

이번 축제에는 가회동 흥선대원군 후손 맹현가(家) 봄·여름 반상차림, 계동 세도가 여흥민씨댁 봄 반상차림, 순종 효황후의 사촌 조씨 가문의 가을에 차리는 어른 생신상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였던 사대부가 중에서 기록이 남아 있는 세 문중의 상차림을 재현한다.

사대부가 음식은 궁중에서 비롯된 것이라도 재료나 조리법이 간략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 원장은 전약(煎藥)을 예로 들었다. "소 도가니·뼈·가죽을 꿀·계피·정향 등 약재와 함께 끓인 젤리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음식입니다.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하여 임금이 겨울이면 노신(老臣)들에게 하사했습니다. 사대부가에서도 따라 만들었지만 궁중처럼 값비싼 재료를 넉넉히 쓸 수 없었지요."

이와는 반대로 사대부가 음식이 궐 담을 넘어 궁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영조가 말년에 '내의원에서 만든 고추장이 사부가(士夫家)에서 만든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는 승정원일기 기록이 남아 있다. "영조는 사헌부 지평을 지낸 조종부(趙宗溥) 집에서 담근 고추장을 좋아했어요. 조종부 집에서 만든 고추장을 임금께 진상한 거죠." 조종부의 본관이 순천이니 '순창 고추장'의 연원이 조종부 집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

사대부가가 아닌 서민 음식이 궁으로 전해졌다는 기록은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숙종의 어의(御醫) 이시필이 쓴 조리서 '소문사설(소聞事說)'에 보면 '경자년(1720)에 붕어죽을 쑤어 임금께 올렸더니 맛이 자못 좋다는 하교가 있었다. 내가 예전에 아픈 사람의 집에서 (이 음식에 대해) 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어의가 몸에 좋다는 음식이 있으면 찾아가 맛보고 이를 궁중에 맞게 '업그레이드'하면서 민간 음식이 궁궐로 들어가기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원장은 "궁중음식이 별세계 음식이라는 인식도 있지만, 일반 백성이 먹는 음식과 비슷한 것도 많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