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오가며 만난 사람들에게 대선 후보 TV 토론 볼 거냐고 물어봤더니 다들 "그 재미있는 걸 왜 놓치냐"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 불러 모아 집에서 함께 TV 토론 보는 파티도 연답니다. 토론이 열리는 호프스트라 대학에서도 7500명이 표를 신청해 그중 몇백 명만 당첨됐다고 합니다. 표가 워낙 귀해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수백달러에 거래되기도 한답니다.

◇결전을 앞둔 캠퍼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첫 TV 토론을 하는 26일은 대선 토론 기념일입니다. 1960년 이날 케네디와 닉슨이 미국 역사상 첫 TV 토론을 했습니다. 25일 뉴욕주에 있는 호프스트라 대학에 도착해보니 거대한 트럼프 머리 인형을 쓴 사람이 입구에 서 있었습니다.

캠퍼스는 전체가 대선 토론장으로 변신한 듯합니다. 방송사 부스가 곳곳에 진을 치고 있고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자원봉사 학생만 500명이라고 합니다. 결전의 날을 앞두고 전운이 감도는 분위기입니다.

◇용의주도한 클린턴 대(對) 충동적인 트럼프

토론장은 막바지 점검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낮은 조명 아래 푸른색이 감도는 어두운 바닷속 같은 무대에서 사람들이 마이크 테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와 클린턴이 어느 쪽에 설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답니다. 합의가 안 되면 동전을 던져 결정한다고 합니다.

달 착륙 생중계 이후 미국 방송 사상 최대 이벤트로 불리는 2016년 미 대선 첫 TV 토론이 26일(현지 시각) 밤 뉴욕주(州) 헴프스테드의 호프스트라대에서 열린다. 사진은 25일 호프스프라대에서 학생들이 각각 토론 진행자인 NBC 앵커 레스터 홀트(왼쪽 끝)와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오른쪽)의 대역을 하며 TV 토론 리허설을 하는 모습.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생들 얼굴에 트럼프와 클린턴의 얼굴을 합성했다. 실제 토론에서는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뀔 수 있다.

[힐러리 미국 대선 후보는 누구?]

이번 TV 토론이 유독 관심을 끄는 건 치열한 접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면에서 대비되는 후보들이기 때문입니다. 용의주도한 클린턴과 충동적인 트럼프,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걱정인 클린턴과 너무 의식 안 해서 문제인 트럼프, 민주 대 공화, 여자 대 남자…. 여기에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성향이 더해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가 커졌습니다.

◇'방송 감각' 대(對) '공직 단련'

대선 후보에게 TV 토론이란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잘못했다가 정치학 교과서에 잘못된 사례로 오를 수도 있는 공포의 무대입니다. 하지만 10년 넘게 TV 리얼리티 쇼를 해온 트럼프는 방송을 압니다. 시청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람들이 무엇에 환호하는지 압니다. 유세 때 봐도 언제 멈추고 언제 목청을 높이고 언제 웃어야 할지를 압니다. 타고난 거죠.

클린턴은 공직자로서 공개적인 일대일 토론을 많이 해봤다는 게 강점입니다. 2008년 대선 도전 때와 상원의원 출마했을 때 어려운 시험을 치러봤습니다. 국무장관으로서 '살벌한' 청문회도 거쳤습니다. 리비아 벵가지 테러 관련 청문회 때는 11시간 동안 쏟아지는 질문을 감당하고 나오다 기절한 적도 있습니다. 각자 가진 강점을 어떻게 쓰느냐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트럼프는 배우"

"트럼프가 배우라는 걸 잊지 마." 대선 후보 TV 토론을 취재하러 간다니까 정치에 관심 많은 친구가 당부했습니다. 실제로 노련한 정치인들을 인터뷰해보면 표정이나 말로는 감정 변화를 읽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린다든지, 다리를 떤다든지, 눈알을 불안하게 굴립니다. 자신을 완벽하게 통제하기가 그만큼 어려운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말보다는 행동에 더 민감합니다. 거기에 진짜 모습이 담겨 있다고 보는 거지요.

전문가들은 이번 토론은 두 후보가 유권자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뛰어넘느냐, 아니면 확인시켜 주느냐의 게임이라고 말합니다. '트럼프는 국정에 대해 잘 모르고 기질적으로 대통령에 부적합하다.' '클린턴은 거짓말을 잘하고 스태미나가 부족하다.' 트럼프와 클린턴은 서로를 이렇게 비난해왔습니다. TV 토론이 이 판단에 필요한 실마리를 줄 수 있다는 거지요.

◇대중의 마음을 얻어라

호프스트라대에 마련된 토론장은 마치 검투사들의 대결장 같았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검투사)'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내가 최고인 건 (상대를) 빨리 죽여서가 아니라 관중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관중의 마음을 얻어라(Win the crowd)." TV 토론의 본질도 그렇습니다. '누가 압도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국민의 마음을 얻느냐'의 싸움입니다. 토론에서 상대를 꼼짝달싹 못 하게 몰아세웠다 해도 그 모습이 국민 눈에 '대통령 후보답지 못하다'고 비치면 마음을 얻을 수 없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