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소설가

오래전부터 간직해온 특별한 소망이 있다. 히말라야 설산에 올라보는 것, 알래스카 설원을 걸어보는 것. 몇 년 전, 18일에 걸쳐 안나푸르나를 종주했으니 첫 소망은 이룬 셈이나 두 번째는 그저 '꿈속의 땅'으로 남겨져 있다. 머릿속이 껌껌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날이면, 나는 습관처럼 그곳을 상상하곤 한다. 그때마다 조급증이 난다. 이렇게 미적거리다 영영 못 가고 말지도 모르는데. 늙거나, 병들거나, 죽거나, 그 밖에 다른 이유로. 그러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 '이후'가 겁나기 때문이다. 다녀오고 나면 살아서 꿈꿀 세상이 더 이상 없을까 봐.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잭 런던의 '황야의 부름'이었다.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부잣집 애완견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던 주인공 '벅'이 알래스카로 끌려가 썰매 개가 된 후 겪는 모험담, 혹은 성장담쯤 될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총명한 머리, 냉정한 판단력. 벅의 뛰어난 자질과 지난한 여정은 우리 동네가 세상의 전부인 줄로 알았던 촌뜨기 소녀에게 눈 덮인 황야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읽은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는 그 땅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었다.

"어느 겨울날, 알래스카 철도를 탔다…(중략) 기차는 매주 한 차례씩 페어뱅크스와 앵커리지를 왕복한다. 평균 시속 48킬로미터, 550킬로미터 거리를 11시간 동안 달린다. 극한의 알래스카 들판을 덜컹덜컹 달린다. 가도 가도 새하얀 세상, 겨울철 알래스카 철도를 타면 시간의 흐름이 멎어버린다."

저자인 호시노 미치오는 20여년간 알래스카를 찍었던 일본의 사진작가다. 그의 글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은 우리의 핏속에 곤히 잠든 야성을 흔들어 깨운다. 생명에 대한 존중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운다. 인간으로서 자신을 이 지상의 무수한 생명체 중 어디쯤에 위치시켜야 하는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통찰하게 만든다.

"사람은 늘 무의식적으로 자기 마음을 통해서 풍경을 바라본다. 오로라의 신비한 빛이 들려주는 무언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속 풍경에 벌써부터 있었던 것이리라." 나는 알래스카에 가면 아무데서나 손을 들어 기차를 세우는 플랙 스톱을 해볼 생각이다. 밤이 오면, 오로라가 춤추는 설원을 걸어볼 것이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