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 예술의 대모(代母)인 거트루드 스타인
피카소, 세잔, 헤밍웨이 등을 발굴 경제적 후견인 역할
파리 플뢰뤼가 27번지 그녀의 아파트엔 세기의 천재들이 모여 토론
예술은 돈으로 꼭 보상 되지 않아도, 기적 그 자체로 소중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정말 날마다 오니까.”-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1874~1946)

스스로 작가이자 예술가들의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스타인

미국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이 쓴 ‘앨리스 B. 토클라스 자서전’이라는 책이 있다. 이 독특한 자서전의 한국어 번역본은 10년 전 처음 나왔다가 최근 다시 나왔다. 이 자서전 주인공은 제목과는 달리 토클라스가 아니라 거트루드다. 두 사람은 동성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다. 그들은 파리에서 25년을 살면서 ‘플레인 에디션’이란 출판사를 꾸렸다. 거트루드는 토클라스를 빌려 제 일생을 회고하는 책을 남긴 것이다.

“이런 말을 해도 좋다면, 내가 평생 만난 천재는 세 명뿐이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처음 본 순간마다 내 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는 것, 그 소리에는 어떤 실수도 없었다고 말하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세 명의 천재란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다.”

아하, 거트루드가 스스로를 천재라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런 대목쯤은 애교로 눈감아주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20세기 예술의 성지가 된 파리가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를, 무명 예술가들이 어떻게 거장으로 성장하는지를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거트루드 스타인, 천재들의 명석함 알아보는 데 탁월

사람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파리로 밀려들던 20세기 초, 파리 ‘플뢰뤼 가 27번지’의 한 아파트에는 예술계의 신성들이 모였다. 방 두 개와 12평 슈튜디오로 이루어진 거트루드의 아파트는 훗날 예술의 성지로 떠오르는데, 피카소, 마티스, 세잔, 마네와 같은 화가들 뿐아니라,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인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검정 고양이’라는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던 에릭 사티, 사진작가 만 레이 등이 모였다.

이들은 신작 그림을 걸고, 새 곡을 연주하며, 문학사조에 대한 토론을 벌인다. 이들은 거트루드의 아파트 살롱에서 밤마다 예술적 열기를 뿜어내며 예술이 베푸는 지복을 취하도록 맘껏 들이킨다.

1874년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거트루드 자신도 작가였지만 재능은 부족했다. 그 대신 다른 사람의 내면에 잠재된 예술적 천재성을 알아보는 명석함을 가진 사람이다. 거트루드는 7세 연하인 피카소와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피카소는 거트루드에게 모델이 되줄 것을 부탁해서 그의 초상화를 단숨에 완성한다.

거트루드는 피카소와 마티스와 세잔의 천재성을 일찍이 꿰어보며 이들을 후원하고, 20대를 벗어나지 못한 기자이자 신참내기 작가였던 헤밍웨이에게 기자직을 그만두고 작품을 쓰라고 권한다. 과연 피카소나 세잔은 거장이 되고, 헤밍웨이는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내놓으며 위대한 작가로의 첫발을 내딛는다. 거트루드는 무명 예술가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그들의 경제적 후견인이자 멘토로 나서며 20세기 현대 예술이 꽃피는데 기여한다.

생전에 부와 명성을 얻은 작가는 1%도 안돼

평생을 가난과 고독에 시달린 이중섭

예술 창작의 보람과 기쁨은 항상 돈으로 보상이 되는가? 그 대답은 ‘노’다. 생전에 명성과 부를 거머쥐는 예술가도 없지 않지만 그런 이들은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가들 99퍼센트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 살다 죽는다. 그림 두 점을 팔았던 빈센트 반 고흐 같이 죽은 뒤 작품 가치가 올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이득은 온전히 작품을 헐값에 사들인 소장자의 몫이다.

이중섭은 집도 절도 없이 여관 등지를 떠돌다가 죽고, 박수근은 미군 초상화를 그리며 근근이 가족 생계를 해결하고, 권진규는 고독과 병고를 이기지 못해 아뜰리에에서 목을 맨다. 어디 그들뿐이랴.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리던 손상기나 불운 속에서 생을 마친 재미화가 최욱경도 마찬가지다. 작가들은 불행의 지고함 속에서 오로지 예술혼이라는 한줄기 빛을 찾을 뿐이다.

예술가의 황홀경은 작업 그 자체에 있지 물질적 보상에 있지 않다. 돈을 앞세우는 예술가가 욕먹는 것은 돈을 밝힘으로써 예술혼을 배반했다고 여겨지는 까닭이다. 20세기 현대 예술의 대모(代母)인 거트루드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술 세계 속에서도 행복해 하던 수많은 20세기 천재들을 가까이 지켜보며 이런 사실을 뼛속까지 깨달았다.

그가 남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날마다 기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정말 날마다 오니까.”라는 말은 새겨볼 만하다. 예술가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그 작업에 몰입하면서 기적을 겪는다. 그들이 돈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작품에 몰입하면서 얻는 황홀경을 예술가의 보람과 기쁨이자 기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장석주는 스무살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서른 해쯤 시인, 소설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여름, 서울 살림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 호숫가에 ‘수졸재’라는 집을 지어 살면서, ‘일요일의 인문학’ 등 다수의 저작물을 냈다. 최근 40년 시력을 모아 시집 ‘일요일과 나쁜 날씨’, 시인 박연준과 결혼 식 대신 쓴 책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