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술은 언제나 담담하다. 그리고 욕심이 없어서 좋다. 없으면 없는 대로의 재료, 있으면 있는 대로의 솜씨가 꾸밈없이 드러난 것, 다채롭지도 수다스럽지도 않은, 그다지 슬플 것도 즐거울 것도 없는 덤덤한 매무새가 한국 미술의 마음씨다."

너무 익숙해 미처 보지 못했던 우리 안의 아름다움을 이토록 정갈한 우리말로 읊조린 이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미술사가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작은 사진)다. 혜곡은 빼어난 눈으로 한국의 미의식을 포착해 파고들어갔다. 그렇게 길어올린 깨달음을 학문의 테두리 안에만 가두지 않았다. 곱고 쉬운 우리말로 풀어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같은 명저로 많은 이들과 나눴다. 혜곡만큼 한국 미술을 많이 아는 이는 있겠지만, 혜곡만큼 널리 나눈 이는 없다고들 하는 이유다.

올해는 혜곡이 태어난 지 100년 되는 해다. 그는 갔지만, 그의 숨결 깃든 분신이 남아 있다. 서울 성북구 성북로 15길 9. 대로를 살짝 비켜난 곳에 소담한 'ㅁ(미음)'자 한옥 한 채가 꼿꼿한 선비의 품새로 앉아 있다. 혜곡이 1976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살며 집필했던 집이다. 2002년 부동산 개발 붐에 휩쓸려 허물어질 뻔했던 것을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성금을 모아 겨우 살려냈다. 지금은 '최순우 옛집'이란 이름의 '혜곡최순우기념관'으로 쓰인다. '역사 가옥 박물관'인 셈이다. 선생의 뜻을 기리고 후원금도 마련하기 위한 전시와 연주회가 이따금 열린다.

지난 6일부터는 혜곡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우영 사진, 우리 것을 담다'가 시작됐다. 김우영은 유명 광고사진가로 활동하다가 20여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나 그곳의 풍광을 찍어왔다. 평생 우리 것에 탐닉했던 혜곡과는 사뭇 다른 인생 궤적을 지닌 사진가다.

어디까지가 작품인가. 서울 성북로‘최순우 옛집’의 방 안에 김우영이 찍은‘청평사’사진이 걸려 있다. 액자 같은 문틀에 풍경을 끼운 것만 같다. 한옥과 사진,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최순우 선생은 잔재주 부리는 걸 참으로 싫어하셨어요. '자연 그대로'가 가장 아름답다 하셨지요. 김우영은 잔재주 안 부리고 그만의 앵글로 우리 자연을 담백하게 담았어요. 그 점에서 혜곡의 정신을 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홍남 혜곡최순우기념관 관장(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그를 초대 작가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우영은 지난 1년간 청평사, 화엄사, 소쇄원, 소수서원 등 전국 사찰과 서원을 돌았다. 숱한 톱스타도 카메라 앞에 세워 꼼짝 못하게 했던 그가 우리 건축 앞에선 고민이 깊어졌다. 이미 많은 사진가가 담은 한국의 풍경을 색다르게 찍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 덮인 겨울, 하얀 도화지 같은 대지 위로 우리의 선이 오롯이 살아나더군요. 설경(雪景) 속에 하나씩 드러나는 우리 아름다움을 담기로 했습니다." 혜곡이 '외씨 버선 볼의 동탁(童濯)한 매무새' 같다 했던 한국의 선이었다.

눈을 만나 수묵화(水墨畵)처럼 흑백으로 표현된 사진이 옛 한옥 곳곳에 걸렸다. 혜곡이 개성 고향집 문창살과 닮아 고집했다는 '용자(用字)살'과 보·기둥·문이 드러난 도산서원의 벽면을 몬드리안의 색면 추상처럼 찍은 사진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건축과 사진이 만나 한국의 조형미를 시적으로 보여준다. 폭 2m 병풍으로 만들어 마루에 설치한 소쇄원 풍경을 안뜰 우물 옆에서 바라보면 문틀이 액자가 돼 병풍을 감싼다.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정취가 감상의 묘미를 더한다.

혜곡의 문향(文香)에 김우영의 묵향(墨香)이 더해진 전시는 10월 8일까지 열린다. 무료. (02)3675-3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