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의 무게를 달아보니 2㎏이었다. 200자 원고지 5500여 장의 시간을 책장 1221쪽에 녹이느라 머리가 셌다. 문학평론가 김주연(75)씨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그의 비평세계를 결산한 선집 '예감의 실현'을 냈다. 번역가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정식으로 책상에 앉아야만 볼 수 있는 책"이라고 농담조로 축하 인사를 건넨 대형작이다. "문학 처음 시작했을 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참으로 신나는 장르라 생각했는데, 이젠 사람 없는 놀이터에 문학 저 혼자 놀고 있는 게 아닌가. 문학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김씨의 온화한 말투에서 날이 번뜩였다.

―1966년 '문학'지로 등단한 이후 쓴 평론 63편을 묶었다. 현재 국내 문학을 진단한다면?

"작가는 언어로 현실을 구원하려는 제사장이다. 언어가 그 능력을 잃어버렸다. 문학이 죽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회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문학의 대체 현상까지 대두되고 있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가 예견한 일종의 미래 문명 '기계 천사'처럼, 알파고로 대변되는 디지털 기술이 작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문학이 너무 매가리가 없다. 그러니 사람들이 새삼스레 '문학이 무엇이냐' 묻는 것이다.

―그럼 문학이란 무엇인가.

"언어를 뛰어넘으려는 언어다. '한국문학, 왜 감동이 약한가'(1984)에서도 말했듯, 문학은 초월성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감동도 있다. 바뀐 환경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에 도전하는 최근 20~30대 작가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 재래의 언어로 비애를 표현하는 수준에 문학을 잔류시키지 않으려는 태도."

지난 6일 김주연씨가 경기도 용인 자택에 있는 서재에 앉았다. 예상 외로 책이 많지 않았다. 그는 “2006년 숙명여대에서 퇴임하면서 5000여 권의 책을 도서관에 기증했다”고 말했다.

―최근 문학의 불가해성이 심해졌다는 불만이 나온다.

"문법과 문장의 파괴만이 전복이라 생각하는 작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학을 포함한 문화엔 딜레탕티즘(dilettantism)이 있다. 일종의 유희적인 태도인데, 예전에 여대생들이 옆구리에 '타임지' 끼고 다니면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았다. 읽지도 않으면서 폼만 잡는다고. 그때마다 나는 항상 변호했다. 그게 폼 난다는 걸 아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난해의 당위성 없이 겉멋만 과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진짜를 키워내는 과정에 수많은 낙엽이 떨어지는 법이다. 시 분야가 특히 그런데, 난해 시는 1960년대에도 있었다. 난해함이 내발적 필연의 산물인지 겉멋인지 감별하는 법이 있다. 꽤 분량 있는 산문을 써보게 하면 된다. 많은 난해 시인이 양질의 산문을 못 쓰더라."

평론가 김현·김병익·김치수와 더불어 '4K'로 불리며 1975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를 세우는 등 깊은 족적을 남겨온 그는 이번 책을 통해 "문학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시대의 징후를 예감한다"는 철학을 드러내려 했다. "사이버 세계를 논한 '가짜의 진실, 그 환상'(1998), '디지털 욕망과 문학의 현혹'(2001) 등을 썼다. 당시엔 다들 관심이 희미하던 분야다. 이게 점차 진행돼 SNS 시대에 이르렀다. 책 제목은 그런 예감의 현실화를 표현한 것이다."

―'주례사 비평' 등 최근 비평에 대한 비판도 예감했나.

"덮어놓고 좋게만 써주는 비평은 당연히 비판받아야겠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어 주례를 서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적확한 용어 같진 않다. 감각적인 걸 얘기할수록 좀 더 치밀해야 한다. 그래야 비판 대상자가 꼼짝 못한다. 그리고 요새 평론 좋게 써준다고 해서 책 더 안 팔린다."

독문학자로서 31년간 숙명여대 강단에 선 그는 2009년부터 3년간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국내용 번역'을 버려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번역은 원자재의 가공·수출 과정이다. 원작이 달라지는 건 불가피하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그래서 맨부커상 받은 것 아닌가."

―향후를 예감한다면?

"로봇이 소설을 쓰는 시대가 왔다. 이제 문학은 지식 전달자의 역할에서 더 나아가 지식 생산자가 돼야 한다. 문학이 기계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고통과 고뇌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