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문화부 차장

진덕규 교수는 올해 일흔여덟의 원로 정치학자다. 386세대는 그를 1980년대 필독서였던 '해방전후사의 인식' 저자로 기억한다. 2014년 용재학술상을 받은 그는 평생 정치권에 눈 돌리지 않은 외고집 학자로도 유명하다. 정치 교수들이 탐내던 집권당 외곽 연구소 이사장직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여의도 정가에서 화제 된 일도 있다. "정치 교수가 다 뭐야? 선생은 늙은이의 이상을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밀어주고 꿈을 키워주는 사람인데 정치하려고 교수 타이틀을 따? 다 잘라버려야 한데이."

대쪽처럼 깐깐했으나 진덕규의 제자 사랑은 유별했다. 1969년부터 33년간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했다. 이어령, 소흥렬과 함께 3대 명강으로 꼽힌 그는 100명 넘는 대형 강좌 수강생 이름을 모두 외워 학생들을 감동시켰다. 강의 틈틈이 '딸자식' 둔 아버지처럼 늘어놓은 잔소리는 SNS 어록으로 남았다. "느그들 한 달에 얼마 쓰노. 난 7만원 쓴데이. 그래도 밥 세 끼 먹고, 영화도 보고, 출퇴근까지 한데이. 그러니 과외 때려치우고 공부해라. 지하철에서 나오면 상가 두리번대지 말고 머리 숙이고 책 보래이. 아무도 못 건드리게 무섭게 책 보면서 걸어오래이."

그 잔소리 들으며 대학 다닌 기자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민주화 시위 따라다닌다고 수업을 빼먹었더니 F학점을 줬다. 기자 되고 나서는 '애 키우며 취재도 다니려니 죽을 맛'이란 글을 어딘가에 썼더니 신문사로 전화 한 통 걸어왔다. "힘들제? 그래도 포기해선 안 된데이. 조선일보라는 산을 반드시 넘어야 한데이." 학력고사 점수 따라 들어간 대학이지만 졸업 20년 만에 처음 '나도 이대 나온 여자'라는 세간의 비아냥을 자부심으로 받아들인 순간이다.

본관 점거 38일째인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를 보면서 진 교수를 떠올렸다. "여성들이 주도하는 세상은 달라야 한데이. 유연하고 밝고 엄마같이 따뜻한 세상이어야 하는 기야." 퇴임 무렵 그가 남긴 덕담이 생각나 낯이 뜨거웠다. 해법이 어려운 게 아니었다. 발단은 교육부 졸속 정책이고, 30억이란 돈에 솔깃한 총장이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 이화가 거리의 소녀들 데려다 책상 앞에 앉힌 130년 여성 교육 산실이긴 하나, 아무리 돈이 궁해도 뷰티와 웰니스 산업까지 학문의 장으로 가져올 이유는 없다. 늦게라도 토론장 만들어 경청하면 될 것을, 골든타임 놓치고 교수 감금과 경찰 동원 해프닝을 일으켰다. 총장은 경솔했고, 재단은 오만했다. 공은 학생들에게 넘어갔는데, '총장 사퇴' 카드만 밀어붙인다. 마스크 벗고 대화하면 되는데 그 쉬운 걸 안 한다. 여성끼리도 소통 못 하는 이화가 여성 지도자의 불통(不通)을 비판할 자격 있을까.

차라리 독재와 싸우느라 최루탄 매캐했던 교정이 좋았다. 학생들을 경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교수들이 스크럼 짜고 맞섰던 시절이다. 대학이 취업 전선 되고 비즈니스로 전락한 시대, "느그는 돈 돈 하는 천박한 세상 말고 어나더 월드로 가야 한데이" 꾸짖던 노(老)스승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