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찰청은 2006년 부산 영도구 한국해양대 망양대주차장 맨홀 속에서 발견된 살인사건 피해자의 얼굴을 3D 기술 등을 이용해 복원했다고 19일 밝혔다. 〈조선일보 8월 20일자 A10면〉

지난 7월 중순 부산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 수사관들은 부산 두구동 영락공원묘지에서 한 시신을 꺼냈다. 10년 전인 2006년 부산 동삼동 맨홀 속에서 천가방에 싸인 채 발견됐던 남자 변사체였다. 당시 경찰은 이 남자가 누군가에게 맞아 목뼈가 부러진 뒤 질식사한 것으로 보고 신원을 파악하려 했으나, 시신이 심하게 부패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시신에서 DNA도 채취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이나 유족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 사건은 작년 9월 영도경찰서에서 부산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으로 인계됐다. 10년이 지나 파낸 시신은 피부와 근육이 없어지고 뼈밖에 남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난 18일 부산경찰청 인터넷 SNS 계정에 한 남자의 얼굴 그림이 올라왔다. 둥글둥글한 얼굴형에 코가 펑퍼짐하고 앞니 사이가 벌어진, 30~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의 모습이었다. 눈꼬리가 약간 들렸으며 머리카락은 짧은 편이었다. 10년 전 동삼동에서 죽은 채 발견된 남자의 얼굴이었다. 수사팀이 이 남자의 머리뼈를 가톨릭대와 중앙대 응용해부학 연구진에 보내 생전의 얼굴로 추정되는 모습을 복구한 것이었다. '얼굴 복원'이라 불리는 해부학 기술이었다.

얼굴 복원 전문가들은 머리뼈의 3차원 이미지에 근육과 피부를 입히고 눈·코 등 얼굴의 각 요소를 배치한다. 이번 연구팀은 우선 머리뼈를 놓고 CT 촬영을 했다. 0.6㎜ 간격으로 찍혀 나온 240장의 머리뼈 가로 단면을 컴퓨터상에서 이어붙여 머리뼈의 3차원 이미지를 완성했다.

다음엔 근육·피부를 뼈 위에 가상으로 붙였다. 이 단계에선 지난 2012년 황현식 전남대 치의학과 교수가 발표한 연구논문 '얼굴 복원을 위한 한국 성인 피부 두께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했다. 한국 성인 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광대뼈·미간·코끝 등 얼굴 52곳의 근육·피부 두께를 CT 촬영해 평균치를 구한 연구였다. 여기에 나온 남성 표본 50명의 평균치를 적용했다. 예를 들어 미간의 가운데 지점엔 근육과 피부를 5.6㎜ 두께로 붙였고, 인중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엔 12.9㎜로 붙였다.

이렇게 얼굴의 대략적인 형태를 완성한 뒤에는 마지막으로 '형태소'라 불리는 눈·코·입·눈썹·머리카락 등을 배치했다. 이 단계에선 뼈 형태와 10년 전 최초 발견 당시 시신의 모습이 함께 고려됐다. 예를 들어 머리뼈 가운데 뻥 뚫려 있는 비강의 모양이 보통 사람보다 넓적해 코는 펑퍼짐하게 그렸다. 또 눈 주위 뼈 구조를 보고 눈꼬리가 살짝 들렸다고 추정했으며, 발견 당시 찍은 사진을 참고해 머리카락은 3~5㎝ 길이의 직모로 표현했다. 완성된 이미지에서 벌려진 입 사이로 앞니가 돌출돼 보이는 것에 대해 연구팀 관계자는 "앞니 사이가 벌어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입을 약간 벌려 놓은 것이지 앞니가 돌출된 구조는 아니다"고 말했다.

과학적 얼굴 복원은 19세기 말 빌헬름 히스라는 스위스 해부학자가 18세기에 죽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머리뼈를 토대로 얼굴 모습을 추정해 그린 것이 그 시초다. 한국에선 지난 2001년 서울 명동성당이 순교자 고(故) 김대건 신부의 얼굴을 복원하면서 처음 시도됐다. 이번 복원 작업의 책임자인 이우영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네덜란드에선 2008년 변사체로 발견된 10대 소녀가 얼굴 복원으로 그 신원이 확인됐고, 결국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진 사례가 있다"며 "한국에서 얼굴 복원 전문가는 10명도 안 될 만큼 개척 단계지만, 최근엔 얼굴 복원만을 전공으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학자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복원 기술이 경찰의 신원 파악 용도로 쓰인 건 2011년 부천의 여성 변사체 사건이 처음이며, 이때 복원된 얼굴이 공개됐지만 아직 신원 확인이 안 되고 있다. 이번 부산 변사체 사건은 그 둘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