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드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낚싯배, 물고기와 한판 사투를 벌이는 낚시꾼, 미끼에 물려 낚싯줄에 끌려 물 밖으로 올라오는 물고기…. 케이블TV 낚시 채널의 한 프로그램은 전에는 볼 수 없던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다양한 시점(視點)으로 카메라가 찍어서 보여준다. 과거 밋밋하게 낚시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한 편의 스포츠 중계를 보는 느낌이다. 어떻게 이런 모습을 찍었을까? 카메라가 작아지고 화소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방수 가능한 소형 카메라를 막대기에 달아 물속에 담그면 낚싯바늘을 빠져나가려는 물고기의 모습이 보인다. 하늘에 뜬 드론 카메라도 바다 위 낚싯배를 풍경으로 찍는다. 낚시하는 사람의 가슴에 달린 광각렌즈 카메라는 얼마나 힘겹게 릴을 돌리는지 묵직한 손맛까지도 보여주려 한다.

카메라 화소가 갈수록 증가하면서 사람의 시각도 확장되고 있다. 관찰자가 아니라 경기에 나서거나 행사에 참가한 이의 카메라가 현장을 기록한다. 헬멧이나 팔에 부착할 수 있는 작고 작동이 쉬운 액션캠 덕분이다. 이런 카메라들은 급경사의 가파른 언덕을 스노보드를 타고 내려오거나 서핑 보드를 타고 거대한 파도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과거에 서울에서 범죄율이 높았던 강남구가 몇 년 전부터 오명을 벗었다. 동네마다 설치된 CCTV 카메라 덕분이다. 지난 2003년 일곱 대로 시작한 강남의 CCTV는 현재 2500여 대가 설치돼 동네 곳곳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나 사고를 감시한다.

하지만 카메라 수가 늘어난 것보다는 카메라 화질의 향상이 범죄율 감소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젠 화면을 확대해서 봐도 화질이 깨지지 않는다. 어두운 밤에 100m 앞 사람 얼굴까지 확대해서 볼 수 있다. 도둑들은 이제 경찰보다 카메라를 더 무서워한다. 이제는 서울 강남구에만 해당하는 현상도 아니다.

CCTV가 아닌 다른 카메라들도 우리를 찍는다. 자동차 블랙박스는 사고에 대비한 용도로 설치되었지만 차 주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많은 영상을 찍고 기록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교통사고 현장을 사고 후가 아닌 사고 순간 현재형으로 보고 있다. 우연히 주변을 지나던 차의 블랙박스 영상에 선명히 찍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엔 영동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자가 몰던 관광버스가 앞서 가는 승용차들을 덮치는 순간이 공개됐다. 며칠 후엔 부산 해운대에서 외제차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다 사고를 낸 순간을 찍은 영상도 나왔다. 영화가 아닌 현실이어서 끔찍했다. 남의 불행을 반복해서 보는 것도 미안했다. SNS에는 이렇게 자동차 블랙박스와 CCTV에 찍힌 자극적인 사진과 영상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어느덧 사물이 사람을 찍는 시대가 되었다. 고화질 카메라는 우리가 어딜 가든 찍는다. 수많은 이미지가 부딪치고 폭발한다. 폭발한 잔해들처럼 너무 많은 사진과 영상들이 어지럽게 세상에 떠다니고 있다. 사진이 너무 많아 찍는 일보다 찾는 일이 더 어렵다.

벨기에 작가 미시카 헤너(Mishka Henner)는 인공위성이나 구글 스트리트 뷰(Street View) 사진을 찾아서 의미를 부여한다. 헤너는 "어느덧 우리 삶은 이런 이미지들을 헤쳐가면서 이뤄진다"고 했다.

모든 사물에 카메라가 달린다면 어떨까? 기계가 모든 것을 자동으로 촬영하고 저장한다면 우리는 찍어놓은 사진에서 찾기만 하면 될까? 자동으로 무조건 많이 찍다 보면 뭐든 하나 걸릴까? 시험 삼아 하루는 액션캠을 상의에 달고 출퇴근을 해봤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탄 후 걸어서 회사로 오는 거리를 다시 집으로 가면서도 찍어봤다. 초당 30장을 찍는 4K 초고화질이라 두 시간 찍은 분량은 전부 1만장이 넘었지만 결국 쓸 만한 건 단 한 장도 없었다. 의도 없이 찍었을 때 모두 쓰레기통에 간다는 것만 깨달았다.

누구든 사진에 찍히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생에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가끔 짧은' 순간들을 위해 나머지 대부분의 찍히지 않고 싶은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찍는 일보다 찍힌 사람에 대한 존중이 더 필요해졌다.

사물이 자동으로 찍은 사진들은 촬영이라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와 비교할 수 없다. 설령 의미 없이 기록된 수많은 이미지에서 인내심을 갖고 찾는다 해도 결국엔 인간이 선택해야 할 몫이다. 파릇하게 올라온 봄날 새싹,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끄는 가족,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 같은 사진들은 인공위성이나 CCTV가 아니라 대상 앞에서 함께 보고 느껴야 찍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