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리우올림픽에서 양궁 단체전과 개인전 2관왕에 오른 장혜진 선수(30·LH)를 귀국 3일째 되던 날 만났다. 한국에 오면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지만 여행은커녕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했다. 인터뷰 일정이 줄을 이었고 사실상 국가대표 선발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종합선수권대회도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첫날부터 너무 바빴어요. 오늘 오전에 할머니한테 전화를 드렸는데 언제 오냐고 하시면서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다음 주까지는 인터뷰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고, 9월 되면 시합 나가야 해서 추석 때도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무척 서운해하셨어요. 옆에 계신 할아버지한테 시큰둥한 목소리로 ‘못 온다네’ 하면서 전화를 끊으시더라고요. 감독님한테 말씀드려서 추석에는 꼭 가서 뵙고 싶어요.”

혹독한 훈련과 치밀한 준비 "할 수 있다, 자신 있다"

장혜진 선수에게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이 향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올림픽 선발전 때 4위에 그쳐 런던행 티켓을 얻지 못했다. 이번에는 3위로 선발돼 난생처음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세계랭킹 1위인 막내 최미선과 런던올림픽 2관왕 기보배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렸다.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던 장혜진이 금메달 2개를 거머쥔 것이다.

“시합 다 끝나고 동생이 그러더라고요. 믿을지 안 믿을지 모르겠는데 꿈을 꿨다고요. 대표팀 선수들이 메달을 따서 목에 걸고 자기한테 왔대요. 미선이랑 보배도 금메달 하나씩을 다 걸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가 하나를 더 꺼내 들면서 두 개를 땄다고 하더래요.”(웃음)

그에게 금빛 기운을 가져다준 건 가족의 길몽뿐만이 아니었다. 0.0058%의 확률이라는 화살 쪼개기, 일명 화살이 화살을 맞히는 로빈후드 애로가 올해 유난히도 많았다.

“국가대표 선발전 치르려고 만든 시합용 화살로 잠깐 연습을 하는 사이에도 그랬어요. 경기 뛰어야 하는데 화살이 망가지니까 코치님한테 속상하다고 했는데, 좋은 징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브라질에 가서 연습하는 도중에도 화살이 두 발이나 깨졌어요. 엔트리 화살이어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코치님이 또 그러셨죠. ‘저번에 화살 깨졌을 때도 결과가 좋았지? 좋게 생각해. 괜찮아.’ 그 말 듣자마자 두 발을 더 쪼갰어요.”(웃음)

이제 와 생각하니 되려고 그랬나 싶지만 좋은 결과의 바탕은 엄청난 훈련과 치밀한 준비였다. 올림픽 준비기간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4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혹독하게 운동했다.

“경기 시즌에는 매일 400발 넘게 화살만 쏘고요. 동계훈련을 할 때에는 체력훈련도 병행해요. 올림픽 같은 메인 대회에 나가기 전에는 특별훈련이라고 해서 소음 적응 훈련도 하는데요. 야구장에 가서 경기 시작 전에 이벤트 양궁 경기를 하는 거예요. 준결승, 결승으로 갈수록 관중이 많아지는 것에 대비해 미리 연습을 하는 거죠.”

작년에 브라질에서 테스트이벤트(프레올림픽)를 치른 후에는 리우올림픽의 양궁장인 삼보드로무 경기장과 똑같은 형태의 태릉선수촌 모의경기장에서 연습했다. 또 2주간의 브라질 전지훈련을 다녀오면서는 시차적응이 얼마 만에 되는지 통계를 내보는 과정까지 거쳤다. 철저한 준비 덕분인지 단체전 8연패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도 메달을 못 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단다.

“연습을 하면서도 저희끼리 ‘당연히 딸 거다’, ‘할 수 있다’ 같은 자신 있는 말만 했어요. 게다가 올해 멤버들이 좋고 팀워크도 좋아서 자신이 있었어요.”

한국 양궁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이다. 오죽하면 ‘금밭’이라 불릴까. 장혜진 선수가 생각하는 한국 양궁의 강점이 궁금했다.

“수많은 선발전을 거치거든요. 그게 다 연습이고 경험이에요. 그 과정에서 터득하는 시합 컨트롤 방법들이 자기 몸에 쌓이고 또 쌓이는 것 같아요.”

장혜진 선수는 화살을 놓는 타이밍 결정이 상대적으로 조금 빠른 편이다. 전략이냐고 물으니 원래 성격이 급해 오래 기다리고 있는 걸 못 견딘다며 웃어 보였다. 상대팀 선수와 번갈아 한 발씩 쏘는 동안, 상대팀 선수가 활시위를 당기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상대 점수를 불러주니까 귀에 들리거든요. 상대가 10점을 쏘면 ‘나도 10점 쏠 수 있다!’ 생각하면서 저한테 집중하려고 했어요. 상대가 실수를 하면 ‘아싸!’ 그러면서 더 자신 있게 쐈고요.”(웃음)

경기 중간중간 빛나던 미소 “이번 올림픽, 후회 없이 즐겼어요”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 무대. 극도로 긴장이 될 것 같은데 장혜진 선수는 경기 중간중간 해사하게 웃음 지었다. 특히 자신의 점수가 잘 안 나왔을 때 더 그랬다. 한 번 웃고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담대함이 느껴졌으며 경기를 온전히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올림픽에 나왔으니까 누구나 다 잘하고 싶고 메달도 따고 싶잖아요. 그런데 올림픽 나갔다 온 선배들, 선생님들이 그러셨어요.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 축제다. 일생 살면서 흔히 오지 않는 기회인데 언제 또 누려보겠느냐. 올림픽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 너무 결과에 얽매이지 말고 후회 없이 즐기다 와라.’ 그 말씀을 제 안에 새기고 시합에 임했어요. 그래서 심적인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 덕에 더 잘 풀렸던 것 같아요.”

장혜진 선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를 따라 양궁장에 처음 가봤다. 그전까지는 양궁이 어떤 운동인지도 몰랐는데 마냥 신기해 보이고 재밌어 보였단다.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서 양궁장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때는 간식도 주고 그러니까 좋아가지고 다녔죠.”(웃음)

양궁을 접했던 1997년,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서 아버지와 세 명의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게 됐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시끌벅적한 세 여동생과 자상한 아버지가 커다란 버팀목이었다. 금메달을 딴 후 장혜진 선수는 “아버지가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특별히 해준 것도 없이 묵묵히 지켜본 것밖에 없는데 고맙다”고 했다.

“아버지는 저한테 한 번도 힘든 내색을 안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집에 가면 무조건 절 1등으로 챙겨주시죠. 그래서 동생들한테 미움도 많이 샀어요. ‘아빠! 맨날 언니만 오면!’ 하면서 성도 내고 그래요.(웃음) 무한한 사랑을 주시니까 감사하죠.”

이번 올림픽을 통해 가족은 물론 전 국민의 응원과 사랑을 받으며 양궁선수로서의 목표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저는 사실 나이도 있고,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시합도 그런 마음으로 했어요. 결과가 좋았잖아요. 많은 국민들이 응원을 해주시는데 그런 응원과 메시지들을 보니까 힘이 났어요. 4년 후 도쿄올림픽에도 다시 도전을 해봐야 하나? 그런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평소 작은 목표들에 만족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편이기 때문에 은퇴 후의 삶까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단다. 대신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오랜 꿈 하나를 들려줬다.

“실은 어렸을 때부터 젊은 엄마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요. 30대가 됐으니 이미 무산됐죠.(웃음) 그래도 여전히 현모양처가 되는 게 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