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 생을 버리려 했는데, 병마와 싸우는 분들께 죄송했어요. 저도 포기하지 말자 생각하게 된 웹툰이었어요."
작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포털 사이트 다음에 연재된 '꺼져줄래 종양군!'에 한 독자가 남긴 댓글. 림프종으로 숨진 중국 만화가 슝둔(熊頓)이 죽기 직전까지 병상에서 연재한 웹툰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웹툰 인기에 힘입어 지난달에는 '스물아홉 나는, 유쾌하게 죽기로 했다'(바이브릿지)는 제목의 책까지 나왔다.
'꺼져줄래 종양군!'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카카오페이지에 중국 작가 링이판(凌一凡·필명 버디)의 '가딩(渡靈):그녀는 나의 웬수'가 처음 연재된 이래, '블루윙(藍翅)' '썸머테이스트(靑空之夏)' '나의 그녀는 구미호(妖怪名單)' 등 중국 웹툰 작품 50여 편이 잇따라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인기 작품은 구독자가 30만~40만명이나 되고, 유료인데도 조회 수 1000만을 넘기는 작품이 나오고 있다. 최근엔 레진코믹스, 봄툰, 네이버북스, 코미카 등까지 가세해 중국 웹툰을 선보이고 있다.
웹툰 업계에선 2012년까지만 해도 미미했던 중국의 웹툰 경쟁력이 최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폭풍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학원물에서 역사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의 순정만화풍 콘텐츠가 10~20대 한국 여성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국내 처음 소개된 '가딩'만 해도 열네 살 때 죽은 친구가 주인공의 수호신이 되어 연애를 방해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의 작가는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2015세계웹툰포럼'에 기조 강연자로 나서기도 했다. 지난달 열린 부천만화축제에선 중국 웹툰 전용관이 인기를 끌었고, 농구를 소재로 한 청춘물인 '썸머테이스트'의 작가 북항은 별도의 팬 사인회를 가졌다.
36개에 달하는 국내 웹툰 업체들은 최근 콘텐츠 확보를 위해 너도나도 해외로 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몰라볼 정도로 성장한 중국 웹툰이 눈에 띈 것. 한국 중장년은 이해하기 힘든 우리 작가 조석의 '마음의 소리'가 중화권에서 인기를 얻는 것처럼, 중국의 젊은 세대가 즐기는 웹툰 중에도 한국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한·중 양국을 오가며 웹툰·게임·영화·드라마 등의 콘텐츠를 발굴해 공급하는 다온크리에이티브 정종욱 이사는 "인구 대국(大國)인 중국은 이른바 '조회 수 레벨'이 수억 뷰에 이르는 작품, 한 편 올리면 순식간에 1000만뷰를 기록하는 작가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한국 포털 사이트들이 중화권 웹툰 시장에 직접 진출한 것도 중국 웹툰이 국내에 소개되기 쉬운 여건을 만들었다. 네이버에 연재 중인 '백귀야행지(百鬼夜行誌)'는 타이완 현지에 서비스하는 라인웹툰에만 연재되던 작품을 국내에 들여온 것이다. 차정윤 네이버 차장은 "간단한 번역만 거치면 바로 게재할 수 있어 국내 소개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이미 중국 사이트를 직접 드나들며 중국 웹툰을 즐기는 독자도 적지 않다. '탄지우' '올드선' 등 국내에 아직 정식으로 소개도 되지 않은 중국 작가들이 인기를 얻을 정도. 카카오페이지를 서비스하는 포도트리의 황현수 사업총괄 이사는 "웹툰은 소설이나 영화·드라마에 비해 문화적 진입 장벽이 낮다"며 "올해부터 이용자 숫자나 매출 면에서 괜찮은 성과를 내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