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새 지도부가 오늘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갖는다. 회동은 2년 전 김무성 대표 체제 출범 때처럼 청와대 제안으로 이뤄졌다.

이 대표는 보수 정당 첫 호남 출신 대표라는 상징성이 있다. 하지만 청와대 정무·홍보수석 등 주요 정치 이력의 대부분을 박 대통령의 참모로 보냈다. 이는 그의 강점이 될 수도 있지만 태생적 한계가 될 수도 있다. 오늘 회동을 보면 어느 쪽일지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새 지도부는 청와대와 내각의 개편, 야당과의 소통, 수평적 당·청 관계 등 대통령에게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국정을 잘 뒷받침하겠다는 덕담만 하고 돌아온다면 '다시 친박당' '청와대 하청(下請) 정당'이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 대표는 취임 첫날인 어제 "내 머릿속에 계파의 존재 자체를 남겨두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지금 새누리당 새 지도부는 최고위원회의 멤버 9명 가운데 8명이 친박계다. 친박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밀어붙일 수 있는 구조다. 그럴 경우 역풍(逆風)이 일 수밖에 없다. 친박의 패권적 행태가 민심의 역풍을 맞아 참담한 결과를 낳은 것이 지난 총선 결과다.

어제 새 지도부는 앞으로 공식회의에서 당대표와 원내대표 외에 다른 최고위원 발언은 비공개에 부치기로 했다. 아침 당 회의에서 돌아가면서 한마디 하는 것은 한국 정치에만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계파 싸움을 부추기는 현장이 되기도 하고 웃지 못할 '봉숭아 학당'처럼 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주류의 언로(言路)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새 지도부가 비주류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라면 곧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이 대표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을 만나서는 "대통령과 정부에 맞서는 것이 정의(正義)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여당 의원 자격이 없다" "여당이 야당이 돼 대통령과 정부를 대하려 한다면 자기 본분을 포기한 것"이란 말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당·청 관계가 문제인 것은 여당의 반발만이 아니라 청와대의 지나친 권위 의식과 지시 일변도와 비타협적 태도도 큰 원인이다. 이 대표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역지사지하지 않으면 여권 내 분란 재연은 시간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대표는 "대통령의 남은 임기 1년 6개월은 긴 기간"이라며 "대선 관리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가와 국민, 민생, 경제, 안보를 챙기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경제·안보 복합 위기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못 한다면 그로 인해 생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다만 국정을 위해선 당정 모두가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 결단할 때와 인내할 때를 가려야 하고 때로 대통령에게 고언(苦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은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