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강원도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휴가 갔던 이현준(32)씨는 밤에 맨발로 백사장을 걷다가 버려진 맥주 캔에 발바닥이 베였다. 이씨는 "보건소에 치료받으러 갔더니 쓰레기 때문에 다쳐서 오는 사람이 하루 5~6명 된다고 하더라"며 "어린아이들이 깨진 병 조각이나 캔을 밟았다간 크게 다칠 수도 있는데 다들 너무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7일 새벽 경포대 해수욕장에는 피서객들이 버린 쓰레기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길이 1.8㎞의 백사장에서 하룻밤 사이에 총 6t의 쓰레기가 나왔다.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흡연 금지'라고 적힌 현수막 바로 아래에도 먹다 남은 음식물과 담배꽁초가 즐비했다. 깨진 술병 조각도 백사장 곳곳에 버려졌다.

산더미 쓰레기 - 지난 7일 오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환경미화원들이 밤새 피서객들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해수욕장이 쓰레기장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환경미화원 수를 몇 배로 늘리고 쓰레기통을 추가 설치하고 있지만, 하루 수십t씩 쏟아지는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같은 날 새벽 2시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백사장에서는 피서객 100여 팀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새벽 3시쯤 썰물로 빠졌던 바닷물이 다시 백사장으로 밀려오자 술에 취한 피서객들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일부 피서객이 뒷정리를 하지 않고 일어서는 바람에 컵라면과 치킨, 소주·맥주병 등이 밀물에 쓸려 바다 위로 둥둥 떠다녔다.

보다 못한 일부 피서객은 직접 바다에 들어가 쓰레기를 치웠다. 권혁득(26·경기도 광명시)씨는 "처음 와 본 대천해수욕장에서 쓰레기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곳곳에 술병… 바다 위엔 쓰레기 둥둥 - 7일 새벽 2시 충남 보령시 대천 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백사장에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다(왼쪽). 일부 피서객이 버리고 간 소주·맥주병 등 쓰레기가 바다 위로 둥둥 떠다니고 있다(오른쪽).

휴일인 지난 6~7일 이틀간 대천해수욕장에서 배출된 쓰레기는 55.4t으로, 평상시에 보령시 전체에서 하루 동안 배출되는 쓰레기양(60t)과 맞먹을 정도였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질서유지요원 김윤성(21)씨는 "밤을 새워 백사장에서 술판을 벌이는 피서객들이 쓰레기 투기의 주범"이라고 말했다.

휴가철마다 전국 유명 해수욕장이 거대한 쓰레기장으로 변하는 현상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올해 지자체와 보건복지부는 주요 해수욕장에 인력을 투입해 금연과 절주, 쓰레기 무단 투기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현장은 예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자체들은 휴가철에 청소 인력을 몇 배로 투입하는 등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보령시는 대천해수욕장 환경미화원을 기존 10명에서 60명으로 늘리고 매일 오전 4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해변을 청소하고 있다. 해수욕장 개장 기간(6월 18일~8월 21일) 동안 쓰레기 처리를 위한 인건비와 소각장 운영비로 3억3500만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했다.

새벽부터 쓰레기를 줍던 환경미화원 정승호(65)씨는 "백사장 1㎞만 청소해도 준비한 1.75t 분량의 종량제 봉투 25개(50ℓ 15개·100ℓ 10개)를 다 쓴다"고 말했다.

강릉시는 쓰레기 무단 투기를 예방하기 위해 올해 백사장에 쓰레기통 60개를 설치했다. 하지만 7일 새벽 쓰레기를 수거한 환경감시대원 54명은 "아무리 쓰레기통이 있어도 백사장에 그대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아 무용지물"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릉경찰서 관계자는 "2012년 주폭(酒暴) 근절을 위해 해수욕장에서 음주 단속을 했을 때는 쓰레기도 예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며 "인근 상인들의 반대로 다시 음주를 허용했지만, 해수욕장이 쓰레기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음주 단속 재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