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식 화가

지난달 집에 흰 소파가 너무 더러워져 천갈이를 했다. 가구 업체에서 견본을 내밀었는데 색이 너무나 많았다. 대략 스무 가지의 색 샘플을 가지고 왔다. 우리 집은 대체로 흰색인데, 소파를 배경과 비슷한 색으로 둘 것인지 뭔가 쑤욱 튀어나오는 존재로 만들지가 문제였다. 나는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 밝은 회색을 골랐다. 흰색은 좀 지겹고, 색이 강한 건 너무 존재를 드러낼까 봐 겁나서 안전지대를 찾는다고 찾은 게 밝은 회색이었던 것이다.

업체 직원에게 밝은 회색이 좋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바보 같고 멋없는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나는 다시 진한 파란색으로 바꿔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2주 후 소파가 왔고, 거실에는 소파만큼의 커다란 진한 파란색 면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처음 보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야무진 꿈이지만 나는 항상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로 살고 싶다. 해오던 것을 계속 반복만 하지 않고, 어지간히 무르익었다 싶으면 다시 앞으로 나가보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나가보면 이제껏 보지 못한 것들이 나오리라 믿는다. 미래였던 지금, 예전에는 본 적이 없는 공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 못 보던 공기를 잡는 일은 참 재미있는 일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항시 그림을 완성하면 뭔가 부족함이 보이고, 뭔가 더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단 마음이 든다.

최근 내 마음에 가득 찬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구도에 대한 것이다. 나는 구도를 잡는 데 있어서 콤플렉스가 많다. 말하자면 좀 고지식한 구도를 자주 쓴달까? 극적인 구도를 쓰기보다는 잔잔한 구도를 많이 사용한다. 태생적으로 소심한 성격 탓도 있지만, 입시 미술을 배울 때 무조건 안정적인 구도가 합격의 길이라 믿고 규칙을 수련해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아직도 내 안에는 안정적 구도로 회귀하려는 습성이 있다.

구도를 잡다 보면 종종 화면이 재미있거나 꿈틀거리기보다는 편안한 혹은 안정적인 모습을 띠곤 한다. 그 안정적 구도가 감지되면 나는 지루해지고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미 자리 잡은 화면의 여러 가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서 고치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린 뒤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 순간에는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나의 습성도 작용할 것이며, 하던 그림을 망치지 않고 잘 끝내려는 알찬 욕심도 보인다. 그리고 용기도 부족하다.

화가 문성식에게 작은 용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 작품 '숲의 내부'. 35x27㎝,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5~2016.

화면은 큰 것과 작은 것이 같이 있어야 활기를 띤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항시 뭔가를 배치할 때는 큰 화면을 이루는 조형적 요소를 결정해 화면의 지배적 인상을 만들어낸 다음 나머지를 고민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나는 자잘한 요소를 이어 붙여 화면을 만드는 버릇 때문에 만들다 보면 어느새 힘이 빠지게 되는 경험을 많이 했다.

올해 초 완성한 '숲의 내부'를 그릴 때였다. 나는 나무의 면적을 얼마만큼 보이게 하고 얼마만큼 가릴지, 바위의 크기는 얼마만 하고 어디에 배치해서 어떤 색이면 내가 보기에 좋을지를 가지고 고군분투했다. 그린 나무를 없애기도 하고 없는 나무를 새로 그려 넣기도 했으며 서 있는 나무를 넘어뜨리기도 해가면서 여러 궁리를 했다. 여섯 달 동안 지지고 볶다 보니 처음에 한 스케치는 간데없고 결국 완전히 새로운 그림이 완성되어버렸다. 그리고 나 스스로 지난번보다는 나아졌다고 자평했다.

살면서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주저하는 소심한 감정을 많이 발견한다. 그런 노심초사의 이면에는 내 의지대로만 뭔가를 제어하려는 욕심이 숨어 있다. 그러다가 뜻대로 안 되면 화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모르는 데로 발길을 내디뎌보면 어떨까 싶다. 낯선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움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니까.

앞으로 나는 식당에 가면 안 먹어본 음식도 좀 시키고, 미장원에 가면 안 해본 모양으로 머리도 자르고, 옷도 평소 전혀 고르지 않는 스타일을 좀 입어보고 살아야겠다. 그런 작은 새로운 시도들이 모여 지금 나의 모습과 인상을 만들듯이, 화면을 그릴 때도 한 붓질, 한 붓질의 심기가, 긋기 전 용기 있는 판단이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화면의 활기라는 건 사실 먹고사는 일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림을 보는 이들이 그 앞에서 잠시 더 마음이 울렁이게 하고 그 울렁이는 화면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집중해서 서 있게 하는, 서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은 쓸모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