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어는 여름 생선의 왕이다. 여름철에 기름이 올라 가장 맛이 좋다. 오래전부터 서울과 호남에서는 민어를 여름 보양식으로 즐겼다. '서울에서는 복중에 민엇국으로 복달임해 온 습관이 있다. 60세 이상이 되는 분들은 예부터 민어 등 물고기를 쇠고기 대신 즐겨 먹는다(1974년 3월 14일 자 조선일보).'

호박이 여물고 민어에 기름기가 오르는 초복(初伏)에서 중복(中伏) 사이 민엇국은 복달임 음식이자 최고의 미식(美食)이었다. '복날이면 민어를 사고 소주와 흰쌀, 미역을 가지고 삼청동 골짜기나 장충단 시냇가에서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민어를 먹으며 더위를 쫓았다(1920년 7월 31일 자 동아일보).'

민어(民魚)란 단어는 국내 기록 중에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1454년)에 처음 등장한다. 민어(鰵魚), 면어(鮸魚)라고도 부른다. 중국 후한(後漢)의 경학자(經學者) 허신이 완성한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면(鮸)이란 글자를 '물고기 이름으로 예야두국(薉邪頭國·고구려)에서 나온다'고 적고 있는 걸 보면,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먹어온 듯하다.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1611년)에는 '물고기 중에서 흔한 것은 민어(民魚), 조기(石首魚), 밴댕이(蘇魚), 낙지(絡蹄), 준치(眞魚) 등으로 서해 곳곳에서 나는데 모두 맛이 좋아 다 기재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서해에서 나던 흔한 생선이었다. 주로 말려서 유통돼 서울에서 많이 먹었다.

조선 중기 문인 이응희(李應禧·1579~1651년)의 옥담시집(玉潭詩集)에 실린 '민어'란 시도 있다. '솥에 끓이면 탕이 맛있지만(入鼎湯猶可)'이란 구절이 등장하는 걸 보면 예부터 민어를 탕이나 국으로 먹었던 모양이다. 이석만이 쓴 간편조선요리제법(1934년)에는 고추장국에 민어와 소고기, 파, 미나리를 넣은 얼큰하고 개운한 민엇국이 등장한다.

민어는 1934년 어획량이 7만4000t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남획으로 급감했다.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1960년대 이후 삼계탕이 대중화되면서 민어는 복달임 음식의 대표 자리에서 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