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에서 서울 강남까지 차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서모(33)씨는 최근 퇴근길에 올림픽도로에서 '초보인데 어쩌라고!'라는 스티커를 붙인 승용차를 만났다. 서씨와 주변 차들은 초보 운전자인 줄 알고 무리한 추월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정작 이 차량은 경적을 울려대며 끼어들기를 반복했다. 서씨는 "'초보 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험하게 운전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서 진짜 초보 운전자를 봐도 양보해주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9일 자동차 커뮤니티인 '보배드림'에 '차량 스티커 진짜 꼴 보기 싫네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차 안에 내 새끼 있다' '뭘 봐? 초보 처음 봐?' '당신은 뭐 처음부터 잘했수?'라는 스티커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네티즌 4만2000여 명이 이 글을 읽고, 댓글 185개를 달았다.

운전자의 개성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도를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차량 스티커들. 애교 섞인 문구도 많지만,‘ R(알)아서 P(피)해라’‘뒤에서 받으면 나는 좋지만 뭐 ㅋㅋ’처럼 다른 운전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표현도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저런 스티커를 보면 죽어도 양보 안 해주고 싶다" "뒤차에 대한 도발이다"라는 반응이었다. 일부는 "애교로 넘길 수 있는 표현인데 너무 엄격히 볼 필요는 없다" "운전할 때 한번 웃고 지나갈 수 있는 표현 아닌가"라고 했다.

운전자의 개성을 살린 이색(異色) 차량 스티커는 미국·일본 같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다. '마이 카(My car)'에 이어 '마이 스티커(My sticker)' 시대가 열린 건 지난 1999년부터다. 그전까지는 도로교통법을 통해 '면허를 딴 사람은 6개월 동안 자동차에 초보 운전자 표지를 부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가로 30㎝·세로 10㎝라는 스티커 규격이 있었다. 어기면 범칙금 2만원을 물어야 했다.

그러나 "장롱면허 소지자도 초보 운전자인데 막 면허를 취득한 사람만 스티커를 부착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에 따라 1999년 이 제도가 폐지됐다. 이후 '초보 운전'뿐 아니라 'Baby in car(아기가 타고 있어요·Baby on board의 잘못된 표현)' 스티커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스티커가 유행하다 보니 고객 주문을 받아 2000~1만원에 차량 스티커만 전문적으로 제작해주는 업체도 등장했다. 한 스티커 업체 대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남들이 안 하는 문구'를 주문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차량 스티커들은 대부분 '초보라고 무시하믄 앙대여' '초보 엄마랑 애기가 있어용'처럼 애교 섞인 문구를 담고 있다. 이런 스티커들은 지루한 운전에 활력소가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빵빵대지 마라 브레이크 확 밟아뿌마' '싸움 잘함'처럼 다른 운전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표현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운전자는 "꼴불견 스티커는 뒤차를 도발해 교통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일본처럼 '스티커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면허를 취득한 지 1년이 안 된 운전자들은 '와카바(새싹) 마크'를, 75세 이상 노인 운전자는 '모미지(단풍) 마크'를 의무적으로 붙이게 하고 있다. 영국은 운전 연수 중인 차량은 'L(Learner·견습생)' 마크를 의무적으로 부착하고, 면허를 딴 지 1년이 안 된 운전자는 'P(Probationary·임시)' 마크를 붙이도록 권장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택영 박사는 "차량에 부착하는 스티커를 그저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운전자가 많다"며 "스티커를 단순한 차량 액세서리가 아닌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