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형 서점과 아마존 같은 인터넷 서점에서는 지난 4월 25일부터 일본어로 된 '유엔 북한인권보고서'가 판매되고 있다. 450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2014년 유엔 산하 기구인 북한 인권조사위원회(COI)가 탈북자와 북한전문가들을 인터뷰해 펴낸 보고서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4년 7월 통일연구원이 '북한인권자료집'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해 파일 형태로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시중에 판매되지는 않는다.

기세 다카요시(49) 대표가‘유엔북한인권보고서 일본어판’을 들고 서 있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에서는 팔지 않는 북한인권보고서를 일본에서 책으로 엮어낸 곳은 소규모 출판사 '고로카라'(ころから)다. 이 회사 대표인 기세 다카요시(49)는 지난 2014년 3월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게재된 일본어 번역판 보고서를 읽던 중 탈북자 3만명에 대한 인터뷰 증언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본지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영어로 된 원문 보고서를 보니 북한 정권에서 온갖 탄압을 받았던 탈북자들의 육성 증언이 이 보고서의 핵심이었다"면서 "북한 정권의 인권 침해 실상을 일본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어 번역본 출간을 결심했다"고 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기세 대표는 영문 350페이지에 대한 번역 비용과 400페이지 이상을 인쇄·제본하는 데 드는 제작비를 크라우드펀딩(소액 모금)을 통해 모으기로 했다. 그는 일본 외무성이 정한 '북한인권침해 계몽 주간'인 2015년 12월 중순부터 '유엔 북한인권보고서를 번역·출판하고 싶다'는 주제로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했다. 모금 한 달 만인 2016년 1월 15일 79명이 지원해 목표액인 60만엔을 넘는 71만엔(약 820만원)을 모았다. 기세 대표는 "모금에 참여한 분들은 대부분 재일(在日) 한인,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를 반대하는 일본인들"이라고 했다.

번역에는 영어·한국어·북한 전문가들이 나섰다. 번역에 참여한 재일한인 송윤복(49)씨는 "이 책이 널리 퍼지면 북한 정권뿐 아니라 북한 제재에 미온적인 국제 사회에도 큰 압박이 될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번역본 초판은 800부가 찍혔다. 책값이 8000엔(약 9만3000원)으로 싸지 않지만, 지금까지 300부가량이 팔렸다. 박형중 북한인권연구센터장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에서 일본 민간이 이처럼 자발적으로 나서준 덕분에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