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5층짜리 건물 경비원 A씨는 요즘 층간 소음으로 다투는 두 세입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5층 세입자가 '가죽 공예품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는데, 서너 명의 수강생이 가죽에 구멍을 뚫는 망치질을 할 때마다 아래층에 세든 법무사가 항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두 세입자 사이의 다툼은 최근 법무사가 보복에 나서면서 확전(擴戰)됐다. 법무사가 천장에 깔때기 모양의 스피커를 붙여놓고, 위층을 향해 시끄러운 음악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스피커는 한쪽 방향으로만 소리가 전달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음악을 틀어도 위층만 시끄러울 뿐 아래층은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A씨는 "법무사 사무실에서 위층을 향해 커다랗게 음악을 트는 바람에 위층 공방 아가씨가 신고하겠다며 난리를 치고 있다"며 "두 세입자가 층간 소음과 보복으로 멱살 잡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했다.

최근 층간 소음에 대처하는 각종 보복법이 성행하고 있다. 과거 아랫집에서 빈 페트병 등으로 천장을 두드려 윗집에 항의하는 방법을 썼다면, 요즘에는 그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유명 온라인 쇼핑몰들에서 12만~38만원 사이에 팔리고 있는 '보복 스피커'가 대표적이다. 이 보복스피커들은 원래 실내 벽에 달아 놓을 수 있도록 고안된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를 응용해 만든 것이다. 이를 일부 상인들이 '층간 소음 종결자'라고 홍보하며 팔고 있는 것이다. 층간 소음 분쟁을 이용한 '비뚤어진 상술(商術)'이지만, 실제 판매는 늘고 있다고 한다.

구매자들은 "스피커 세 개를 사서 윗집 침실과 거실 아래 천장에 붙여놓고 크게 틀었더니 며칠 만에 위층에서 내려와 '아이들이 잠을 못 잔다'고 하소연하더라" "아랫집은 맨날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 복수할 수 있어 속이 다 시원하다" 같은 후기(後記)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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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자들은 '층간 소음 항의용으로 보복스피커를 사용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아래층이 위층에 주는 소음도 층간 소음"이라며 "스피커 소음이 주간 45㏈(데시벨) 이상, 야간 40㏈ 이상을 넘어 이웃에게 피해를 줬을 경우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1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환경부 층간 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신고된 층간 소음 민원 1만6514건 가운데 15.8%인 2640건이 아래층 거주자의 보복 소음 때문이었다.

보복스피커 외에 가정용 와이파이(무선 인터넷) 공유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많이 쓰인다. 와이파이를 검색할 때 뜨는 공유기 고유 명칭을 '604호 너네가 사람이냐' '604호 층간 소음 민폐' 식으로 설정해 다른 주민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또 위층 전화번호를 넣은 야식 전단을 배포해 주문전화에 시달리게 하는 방법도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 돌고 있다.

층간 소음 보복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갈려있다. "층간 소음 피해가 얼마나 심했으면 그러겠느냐"며 이해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대응은 갈등만 키울 뿐"이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두 살짜리 아들을 둔 직장인 민모(29)씨는 "아래층 사시는 분이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웃으며 '아이가 씩씩한가 봐요'라고 하길래 소음 방지 매트를 깔았다"며 "주민끼리 소통하고 풀어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