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아들 홍업씨가 금품 수수 혐의로 대검 중수부에 출두했다. 검사들은 위축됐다. 현직 대통령 아들을 직접 조사한 건 수사관이었다. 그는 1시간도 안 돼 자백을 받아냈다. 이듬해 노무현 정부 시절 대선 자금 수사 때도 그랬다. 검찰에 나온 정권 실세 앞에서 검사들이 허둥대자 검찰 간부들은 그 수사관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기세등등하던 정권 실세도 노련한 수사관 앞에선 결국 자백을 하고 말았다.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은 "검사 열보다 낫다"고 그를 칭찬했다. 2011년 퇴임한 그 수사관은 '중수부의 전설'로 남았다.

▶검찰 수사 무대엔 검사만 있는 게 아니다. 검사에 가려 있지만 수사관이란 조연(助演)이 더 많다. 전국 검사 수는 2000여명, 수사관은 5600여명이다. 수사관들은 피의자 체포·조사에서 계좌 추적, 압수 수색까지 궂은일을 도맡는다. 그러니 어느 수사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검사 운명도 달라진다. "검사가 출세하려면 처복(妻福)과 상사(上司)복, 피의자복, 수사관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인사철을 맞아 검사들이 이동하면 유능한 수사관 영입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올 초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출범할 때도 그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특별수사단이 스카우트 경쟁에 나서면서 베테랑 수사관들에게 러브콜이 쇄도했다. 유능한 수사관은 재벌 기업이나 대형 로펌에 고액 연봉 받고 스카우트되곤 한다. 검찰 수사 동향을 알아내기에 그만한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업무 성격상 수사관들에겐 비리의 유혹이 파고들 수밖에 없다. 현직에 있을 땐 돈 받고 수사 정보를 건네기도 하고, 퇴직 후엔 변호사에게 사건 물어다주고 소개비 챙기는 브로커로 변신하기도 한다. 검찰 주변의 흑색 루머를 만들어낸다는 말도 적지 않다. 때론 뇌물 액수가 검사를 능가한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이 수사 무마 청탁 대가로 부장검사에게 건넨 뇌물은 2억7000만원이었으나 대구지검 수사관에게 건넨 돈은 무려 18억원이었다. 피의자들 눈엔 검사보다 실무를 맡은 수사관이 더 절실한 공략 대상일 수 있다.

▶엊그제 검찰이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현직 수사관을 체포했다. 정씨가 고소한 사건을 맡은 뒤 사건 편의 봐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한다. 수사 정보 유출보다 훨씬 악성이다. 또 다른 수사관도 정씨 측으로부터 2000만원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검사 비리에 수사관까지 가세한 양상이다. 갖은 고생 다하며 묵묵히 일하는 '빛나는 조연'들로선 참담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