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열 정치부장

요즘 새누리당 하는 양을 보면 재집권에는 별 뜻이 없는 것 같다. 리베이트 의혹을 처리하는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표도 그리 '새 정치'답지 않다. 그래서 눈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돌아간다. 친노(親盧) 패권, 운동권 정당 같은 꼬리표를 달고 다니다 내분으로 갈라지기까지 했었지만 총선 때 변화를 시도하며 1등을 했다.

이후로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 일환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더 주고 기여가 없는 직원에게는 덜 주자는 것이다. 일반 기업에는 일반화돼 있지만 공공기관들은 노조 힘으로 막아왔다. 노조들은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된 직후인 지난 5월 더민주에 "국회에 특위를 설치해서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더민주(변재일 정책위의장 등)는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의 불법·탈법 사례는 조사하지만 당 차원에서 도입에 반대할지는 검토해 봐야 한다"고 했다. 과거 더민주였다면 물어볼 필요도 없이 노조를 따라나섰을 거다.

그제 발표된 영남권 신공항 문제 대응도 그렇다. 2011년 이명박 정부의 백지화 결정 때는 "이 대통령이 선거 때 단물 빼먹고 버렸다"고 했다. 그러고는 PK 표를 얻으려 부산 신공항 공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모적 갈등에 대한 정부 책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도 "지역갈등, 비용 등을 고려해 내린 중립적 결정"이라고 했다. 김종인 대표가 어제는 "표를 의식한 지역갈등 유발 공약을 지양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에 20여명 규모의 '국방안보센터'도 만들었다. 백군기 센터장은 "햇볕정책을 포함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 정책들을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정치 스타일도 과거와 달라졌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전대협 출신의 대표적인 86(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운동권 정치인이다. 하지만 국회 원(院) 구성 협상을 투쟁이 아닌 협상으로 조기에 마무리했다. 아침 당 회의도 과거에는 습관적으로 대통령 욕하고, 대안도 없이 정부 정책 반대만 했다. 요즘은 경제 관련 이야기가 반드시 한 토막은 들어간다. 재정, 통화, 금리 등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가급적 언급한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싸가지'다. 과거 더민주는 '맞는 말도 싸가지 없이 하는 사람들'만 보였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막말로 고개를 돌리게 하는 쪽은 오히려 새누리당이다. 여권(與圈)에서는 "더민주가 요즘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면 우린 손도 못 써보고 질 것"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국회가 개원하면서 슬슬 예전 기질이 고개를 들 조짐도 보인다. 지도부는 개원 첫날 세월호 특조위 활동 기한 연장을 들고 나왔다. 더민주 의원 123명 전원이 참여한 1호 법안도 세월호법이었다. 여소야대 숫자의 힘으로 어버이연합 자금 지원 의혹,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등에 대해 청문회를 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그 바람에 당 정책위가 '방위산업 비리 척결법'을 공식 1호 법안으로 낸 것은 가려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 "역시 이 당은 그런 건가"라는 의심이 살아난다. 앞장서는 이들은 이런 문제가 이른바 자기들 '정체성'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과거에도 그랬다. "당 정체성이 달려 있다"고 강경파 몇 명이 외치면 '정체성 다른 사람'으로 찍히는 게 무서워서 당 전체가 따라갔다. 결국 '민생보다 투쟁에 관심이 많은 집단'으로 국민에게 인식됐다. 과거 패턴을 고려하면 더민주가 진짜로 바뀌었다고 보긴 아직 이르다. 김종인 대표라는 이질적 인물에게 당을 맡기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반항할 수는 없는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면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시각도 많다.

지금 더민주가 가는 길은 평소 다니던 길도 아니고, 온갖 장애물로 맘 놓고 가속 페달을 밟을 수도 없다. 옆의 경쟁자와 비슷한 길로 가는 것 같아서 그들보다 목적지에 먼저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들 수 있다. 늘 달리던 반대편 차로는 뻥뻥 뚫려 있다. 한 칸만 왼쪽으로 옮겨 유턴을 해서 다시 저 길로 달려볼까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새누리당은 "더민주 저 친구들, 결국 못 참고 그리 갈 게 뻔하다"면서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