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여름휴가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다이어트에 돌입한 이들이 늘었다. 바닷가나 수영장에서 멋진 몸매를 뽐내겠단 야심보다는, 매력적이지 못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다는 마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은희경의 단편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의 주인공이 다이어트를 결심한 이유도 비슷하다. 사생아로 태어난 뚱뚱한 소년은 가끔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 대학생이 된 이후 아버지를 만나지도 소식을 듣지도 못했다. 그러다 서른다섯에 아버지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소설은 재미난 다이어트 안내서 같다. 살이 왜 찌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로 가득하다. 주인공은 '나쁜 게 왜 그렇게 입맛에 딱 맞는 거냐면, 네 몸이 지방이라면 눈이 뒤집히는 이백만년 전 원시인의 몸이라서 그래'라고 설명한다. '다이어트가 어려운 것은 몸속에 장착된 수백만년이나 된 생존본능 시스템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지방을 모아 저장하는 돌도끼시대의 시스템으로 프로그래밍돼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미와 건강의 기준은 몸속의 지방을 남김없이 태워 없애는 것이다. 다이어트는 원시적 육체와 현대적 문화 사이의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과학자들은 비만이 인류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왜 유인원 가운데 유독 튀는 존재가 되었을까? 미국 헌터대 인류학과 허먼 폰처 교수팀 등 공동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물질대사를 통해 알아보기로 했다. 연구진은 대형 유인원의 대사 특징을 비교했다. 사람과 침팬지·고릴라·오랑우탄의 몸무게, 지방 제외 몸무게, 체지방 비율, 총에너지 소비량, 기초대사율, 운동량을 조사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비만의 정의와 원인은?]

조사 결과 사람은 체지방 비율에서 나머지 유인원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났다. 몸에 축적된 지방이 다른 유인원보다 훨씬 많았다. 사람은 체지방 비율이 여성 41%, 남성 23%이었다. 반면 침팬지는 암컷 9%·수컷 8%, 고릴라는 암컷 14%, 수컷 15%, 오랑우탄은 암컷 23%, 수컷 16%로 인간보다 훨씬 낮았다. 하루 총에너지소비량은 인간 여성이 2200㎉로 유인원 암컷 가운데 가장 많았고, 남성은 2700㎉로 고릴라 다음으로 많았다. 하지만 고릴라는 덩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체중을 비슷하게 맞출 경우 인간 남성이 고릴라 수컷보다 훨씬 높았다.

연구진은 600만년 전 침팬지와 공통 조상에서 갈라진 뒤 인류는 체지방을 늘리고 기초대사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빠르게 진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하면서 동시에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는 뜻이다. 왜 그랬을까. 연구진은 인류가 다른 유인원과 구분되는 특징으로 커다란 뇌를 가졌고 상대적으로 번식력이 높고 오래 사는데, 이러한 특징은 높은 기초대사량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뇌는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비싸고 이기적인 조직'이다. 뇌는 신체의 불과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20%를 쓴다. 사람은 다른 유인원보다 3배 큰 뇌를 가지고 있으니 기초대사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또 장수하려면 평소 정비 시스템이 작동해야 하는데 여기에도 칼로리가 소비된다.

기초대사량이 높으면 기근이 닥쳤을 때 더 위험하다. 지방은 기근과 같은 비상사태 때 몸이 사용할 수 있는 비상식량이다. 지방을 많이 지닐수록 생존에 유리했다. 문제는 우리 몸은 여전히 지방을 잘 비축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는데 사상 유례없는 영양 과잉 시대를 산다는 사실이다.

은희경 소설의 주인공이 택한 방법은 앳킨슨 다이어트다. 고기와 지방, 채소는 섭취하지만 탄수화물은 금지한다. 지방은 탄수화물을 만났을 때 화학반응을 일으켜 몸에 쌓이기 때문이다. 결국 주인공은 6주 만에 12㎏이나 빼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날씬해진 그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20년 동안 비만을 연구한 아힘 페터스는 자신의 책 '이기적인 뇌'에서 '다이어트는 부질없다'고 말한다. 뇌는 다이어트를 '비상 상황'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비상조치를 취한다. 뇌로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체내 물질대사 균형을 깨뜨린다. 뇌에 쌓인 스트레스 때문에 긴급히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코르티솔 물질이 과다 분비된다. 페터는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면 골격조직과 근육이 감소하고, 피하지방이 복부지방으로 변환된다'고 말한다. 감정과 기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우울증을 유발하고 자신감을 떨어뜨린다. 이렇게 뇌는 다이어트를 단호히 거부한다. 하루라도 빨리 다이어트를 시작해 살 빼고 건강해지라는 아내에게 들이댈 핑곗거리를 하나 찾은 듯하다. 그럼 운동하라고 하겠지. 다이어트가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