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윌리엄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햄릿'을 함께 읽는 교육 프로그램이 나왔다. 정창권(48) 이화여대 에코 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연구교수가 개발한 '셰익스피어 햄릿 모델링'이다. 독자가 '나도 햄릿'이란 입장에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왕자 '햄릿'이 부친을 독살한 숙부에게 복수하는 원작 내용을 독자가 햄릿의 심정으로 분석한 뒤 1막부터 5막까지 각 장(場)에 '햄릿의 복수심 지수(指數)'를 매겨 나중에 합산하는 것. 가령, 햄릿이 숙부 앞에서 독살을 다룬 연극을 공연하는 3막을 놓고 독자가 햄릿의 복수심과 복수할 가능성을 0~10점으로 매기곤 나중에 다른 독자와 비교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0점은 숙부가 범인이란 증거가 없는 상태이고, 10점이면 햄릿이 확신을 갖고 숙부를 살해하는 것을 뜻한다.

정창권 교수는 영문학자가 아니다.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나와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땄다. 평소 새로운 인문학 방법론을 탐구해 온 정 교수는 지난 5월부터 대일외고 등 몇 개 고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햄릿' 함께 읽기를 특강 형식으로 펼쳐왔다. 정 교수는 최근 서울 삼각산고교 1학년 10반에서 학생 28명이 모인 가운데 '햄릿' 읽기를 시연(試演)했다. '햄릿' 이름을 들어본 학생은 8명이었고, 완독한 학생은 단 1명뿐이었다.

삼각산고교에서 ‘햄릿’ 특강을 펼치는 정창권 교수는 학생들에게 “여러분 각자가 햄릿의 심정으로 문호(文豪)의 작품을 평가해달라”고 주문했다.

정 교수는 학생들에게 '햄릿' 줄거리를 나눠준 뒤 2시간 동안 '햄릿'(최재서 번역본)의 주요 대목을 낭독하고 풀이했다.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중략) 죽은 뒤에 무엇이 올지 모르는 두려움과 나그네 한 번 가면 다시 돌아 못 오는 미지의 나라가 사람의 마음을 망설이게 하고. (중략) 이래서 분별심은 우리 모두를 다 겁쟁이로 만들고 만다." 정 교수는 "햄릿은 주저하면서 자꾸 복수를 늦춘다. 너무 생각이 많은 거야. 아는 게 병"이라고 우스개도 던졌다.

4인 1조로 앉은 학생들이 각 대목의 점수를 매겨서 제출하자 정 교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해 '햄릿' 내용을 계량화했다. 학생들의 최종 점수는 부분적으로 차이가 났다. 특히 숙부가 햄릿을 외국으로 내쫓으려고 한 대목에선 학생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복수 가능성을 '8점'으로 높이 매긴 학생들은 '햄릿이 추방당하기 전에 선수를 치려고 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복수 가능성을 '5점'으로 준 학생들은 '복수심은 타오르지만 아직 기회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신중하게 평가했다.

이날 특강을 들은 학생들은 "어렵다고 생각해서 외면한 '햄릿'을 앞으로 읽어 보고 싶다"고 했다. 정 교수는 "학교뿐 아니라 도서관에서도 '햄릿' 특강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