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기업 생태계, 모바일 생태계, 지식 생태계…. 언제부턴가 생태계라는 단어를 온갖 분야에서 가져다 쓰고 있다. 원래 생태계란 한 지역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생물의 군집과 그를 지탱해주는 물리적 환경의 총체를 의미했는데, 요즘에는 웬만큼 복잡한 네트워크 시스템이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갖다 붙이는 이름이 돼버렸다. 생태학계도 전에는 산림 생태계나 습지 생태계처럼 한눈에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큰 규모를 주로 다뤘는데, 이제는 '장내 공생균 생태계'처럼 맨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미세 생태계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동물과 식물 세포 대부분에는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소처럼 세포핵과 별개로 자체 DNA를 갖고 있는 소기관들이 들어 있다. 이들은 원래 독립적으로 살던 세균들인데 진화 과정에서 세포질이 특별히 풍성한 다른 세균 속으로 들어가 공생하게 된 것이다. 세포 생태계에는 지금도 세균과 바이러스가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인간 세포에는 툭하면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들락거려 골치를 썩이지만, 곤충 세포에는 월바키아라는 세균이 가장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세균은 특히 수컷을 공략하는데, 유충 단계에서 수컷만 골라 죽이거나 수컷을 졸지에 암컷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우리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은 에머리개미가 월바키아에 감염되면 날개 길이가 변한다는 실험 결과를 얻어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했다.

한편 하버드대 연구진은 월바키아에 감염된 모기의 세포에는 말라리아 병원충 플라스모디움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했다. 월바키아는 모기가 옮기는 뎅기 바이러스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지카 바이러스의 전염 차단에도 효과를 보이고 있다. 실험실에서 모기를 대량으로 길러 월바키아에 감염시킨 다음 야생에 풀어놓을 수 있다면 인류 최대의 적 말라리아 방제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생태학은 이제 의학 최첨단에도 우뚝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