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의 쳇 베이커. 마약 중독으로 엉망이 됐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보았다. 재즈 음악가 쳇 베이커의 인생을 그린 '본 투 비 블루'다. 쳇은 아름다운 선율의 트럼펫 플레이어였고 너무나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 개봉 첫날 첫회로 본 영화는 아름답고 슬프고 예술적이어서 나는 세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뿌연 느낌의 부드러운 영상에는 슬픔의 안개가 깔려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계속 흘러나오는 1950년대 미국 재즈의 선율은 정말 예술이다. 특히 쳇을 연기한 배우 이선 호크가 일품이다. 오버액션하는 법 없이 눈빛으로 조용하면서 강력한 연기를 펼쳐 관중들 사로잡았다. 호크는 쳇 베이커를 열심히 연구해 그의 트럼펫 톤과 연주 스타일을 모방했다. 무엇보다 쳇의 노래하는 모습과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나는 쳇의 트럼펫 음도 좋아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내 가슴을 찌른다. 잘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목소리가 너무 가늘고 비브라토가 아예 없다. 버터도 바르지 않은 토스트처럼 목청이 밋밋하다. 그런데 그의 요상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사랑을 갈망한다. 마치 상처받은 참새처럼.

50년대 미국의 재즈계는 완전히 흑인 세계였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마일스 데이비스 같은 흑인 대가들이 군림하던 때였다. 재즈의 메카는 뉴욕이었다. 갑자기 웨스트 코스트(캘리포니아 중심의 사운드)에서 나타난 백인 트럼피터는 흑인 대가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었다. 그러나 워낙 쳇의 톤이 좋아 찰리 파커가 자기 밴드에 고용함으로써 쳇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인물도 좋았다. 당시 최고 배우로 인기를 누리던 제임스 딘, 말런 브랜도와 비교될 만큼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쳇은 심각한 마약 중독자였다. 그의 인생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트럼펫과 헤로인! 쳇은 마약 딜러에게 심하게 두들겨맞아 이가 모두 파괴됐다. 트럼펫 연주자로선 치명적인 비극이다. 다리 부러진 축구선수와 똑같은 상황이다.

그는 그러나 틀니를 끼우고 다시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탄생한 쳇은 60년대 유럽 재즈 열풍을 타고 활동한다. 하지만 마약 중독은 더욱 심해진다. 공연 수입도 꽤 되었지만 아내와 세 자녀는 전혀 보살피지 않았다. 오직 헤로인이라는 마녀에게만 돈을 썼다.

1988년 화창한 봄날 쳇 베이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마약에 만취해 숨진다. 2층 창문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59년 인생의 희비극이 끝난 것이다. 나는 쳇 베이커를 실패한 인물로만 보지 않는다. 물론 그의 끔찍한 마약 중독이 인생을 삼켜버렸지만 이런 극한의 정신세계에서 독특한 음악이 나온 것이기도 하다.

그가 마지막 묵었던 암스테르담 프린스 헨드릭 호텔에는 그를 애도하는 명패가 있고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210호에는 '쳇 베이커의 방'이라는 호칭을 달았다. 생전 한번도 가족을 보살피지 않은 쳇 베이커가 죽었을 때, 그의 아내 캐럴은 말했다. "이제야 당신이 나에게 큰 선물을 주는구나. 죽었으니 다행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쳇의 사후 캐럴은 수백만달러 저작권료를 받게 된다.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들어보시길. "나는 음(音)과 음 사이에 산다" ―쳇 베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