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느 회사 사장과 저녁을 함께했다. 그는 계열사 실적을 잘 내 규모를 크게 키웠다. 게다가 오너의 사위였다. 농반진반으로 누군가 "그룹 회장까지 하셔야죠"라고 했다. 그가 갑자기 안색을 바꿨다. 손을 세게 내저었다. 농담이라도 어디서 그런 불경스러운 소리 말란다. 그러더니 하는 말. "장성택이 요즘 남 일 같지 않아요." 김일성 사위였던 장성택이 조카 손에 죽은 게 그 몇 달 전이었다. 웃음이 터졌지만 씁쓸했다. 남북한 말고 세상 어디서 이런 '블랙 유머'가 통할까.
▶일본도 기업 대물림이 꽤 있다. 그런데 문화가 다르다. 한국은 혈통을, 일본은 가문을 중히 여긴다. 후계가 여의치 않으면 종종 사위를 양자 삼아 가문과 기업의 대를 잇는다. '서양자(壻養子)'다. 성공 사례가 꽤 있다. 경차로 유명한 자동차 회사 스즈키는 사위들이 2대에 걸쳐 회사를 키웠다. 상공업이 발달한 간사이(關西) 지역 기업 중엔 사위 사장이 대를 이어 백 년 넘게 끌고 온 경우도 있다. 이런 문화에서 장성택 유머는 잘 통하지 않을 듯하다. 서구에선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서 사위는 도장 한번 찍으면 남이다. 이런 풍토에서도 그룹을 장악한 사위가 있긴 하다. 얼굴 잘나고 머리 똑똑하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어느 사위 경영자는 결혼 후 10년 동안 시내버스로 출퇴근했다고 한다. 장인 회사에 함께 다니던 아내가 자가용 동승(同乘)을 거절한 탓이다. 당신은 아빠 회사와 결혼한 게 아니라며. 그는 독하게 견뎠다. 그때 초심(初心)으로 훗날 기업을 맡아 몇 배 키웠다.
▶일본에도 '부자 3대 못 간다'는 뜻의 속담이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창업가의 헝그리 정신을 온전히 이어 받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사위가 필요하다. 모자란 자식을 대신할 수 있으니 일종의 보험이다. 하지만 사위가 눈부시게 탁월할 때 얘기다. 일본이라고 어느 부자가 그저 그런 사위에게 기업을 물려줄까. 시원치 않은 사위에게 물려주려고 했다가 월급쟁이 반란으로 오너 지배권이 무너진 경우도 있다. 전자업체 파나소닉이다.
▶이혼 소송 중인 삼성가(家) 맏사위의 이야기가 월간조선에 실린다. 미리 보도된 요약 기사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결혼 생활 부담 때문에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경호원으로 시작해 한국 최고 부잣집의 사위가 됐으니 마음고생이 오죽했을까. "회장님 손자였기에 아들이 어려웠고 아버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대목에서 그의 처지와 함께 그릇의 크기도 느껴진다. 장성택을 떠올리면 마음이 좀 풀리려나. 이 땅에서 재벌 사위는 눈치껏 처신해야 그나마'백년손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