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충북 진천군 농지 3300여㎡(약 1000평)를 다른 몇 명과 공동 소유한 A씨는 군청에 출석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작년 실사(實査) 결과 농지를 경작하는 것 같지 않으니 해명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농지를 팔아야 한다고 했다. 투자 목적으로 토지를 구매한 A씨는 부동산 업자 조언에 따라 '해외에 자주 나가 농사철을 놓쳤으나 현재 영농 준비 중'이라고 소명했다. 이후 A씨에겐 별다른 통지나 처분이 없는 상태다.

시세 차익을 노리고 농지를 산 소유주들이 다양한 '꼼수'로 경작 의무를 피하고 있다. "농지는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고 명시한 농지법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을 원칙으로 하지만, 많은 소유주가 휴경 핑계를 대거나 눈속임용으로 대추나무·감나무 등 유실수를 심어 놓는 등 편법으로 법망을 빠져나간다. 재작년 강원도에서 실사한 농지 규모는 242㎢(약 7300만평)로 그중 0.6%인 1.4㎢(약 42만평)가 경작 의무 위반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실제 매매 처분된 농지는 지적받은 면적의 4.5%인 6만6000㎡(약 1만9000평)에 불과했다. 강원도의 한 부동산 업자는 "그간 투자 목적으로 농지를 사는 사람을 많이 봤지만 그중 농사짓지 않는다고 매매 처분을 받는 건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국 시·군·구는 매년 농지 실태 조사를 실시해 소유주가 경작하지 않는 땅을 가려낸다. 이후 해명을 듣는 청문 절차를 거친 뒤 '처분 의무 통지'를 보낸다. 즉시 자경(自耕)을 시작하거나 매매 처분하라는 의미다. 둘 중 어느 것도 하지 않고 1년이 지나면 '처분 명령'이 내려진다. 처분 명령을 받고도 땅을 팔지 않으면 해당 농지 공시지가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매년 강제 징수하게끔 돼 있다.

구체적인 제재 절차가 있음에도 제대로 규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폭넓은 예외 조항 때문이다. 법령에 따르면 '농지개량' '영농 준비' '농산물 생산(량) 조정' 등의 포괄적 명목으로 휴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지자체 농정과 관계자는 "농지가 타인의 사유지로 둘러싸인 맹지(盲地)여서 농사를 짓는 게 어려운 경우 등 여러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기 위한 일반 조항인데, 경작 의지가 아예 없는 사람들에게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정해진 휴경 기간도 없어 매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농지를 놀려도 단속하기 쉽지 않다.

나무 같은 다년생식물을 기르는 것도 경작으로 인정돼 과일나무를 심어놓고 눈속임할 수도 있다. 제주도의 한 부동산 업자는 "6.6㎡(2평)당 귤나무 한 그루씩 심으면 투기 목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묘목값과 심는 비용까지 1000㎡(약 300평) 농지 기준 수백만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기대되는 시세 차익을 고려했을 때 감수할 만한 비용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제주 서귀포시 관계자는 "단순히 나무만 심었다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주위에 잡초가 관리되는지 등 종합적으로 살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부동산 업자는 "잡초 관리는 이웃 농가에 사례금을 주고 부탁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농지에 주택이나 축사를 짓겠다며 부담금(공시지가의 30%)을 내고 농지 전용(轉用) 신청을 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농사는 물론 본인이 짓겠다던 건물을 짓지 않아도 최대 3년까지 시간을 끌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각 지자체는 대부분 이런 실태를 알고는 있으나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충북도 관계자는 "법령대로 제재할 뿐 자의적으로 '당신 말을 못 믿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실사도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 조사이므로 어느 해 갑자기 제재 수준을 올리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투기 열풍이 거센 제주도는 작년부터 농지에 대해 특별 전수조사를 실시해 지난달 2.9㎢(약 87만평)에 대해 처분 의무를 통지했다. 제주시 한 법무사는 이에 대해 "통지를 받은 사람들이 자경 의지를 보인다며 대거 제주도로 주소 이전을 하는데 그중 상당수는 위장 전입으로 보인다"며 "현지 농민에게 경작을 부탁하거나 증거 제출 요구에 대비해 비료값 영수증을 받아 놓는 등 꼼수는 나날이 진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