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전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대표

정부는 지난달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로 '코리아 에이드(Korea Aid)'를 출범시켰다. 국제 개발에 십수년간 몸담았던 나로서 관심이 컸다. 이 모델에서 국제사회가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코리아 에이드'에 대해 정부는 "개발협력과 문화를 융합하며, 보건·음식·문화 요소를 포괄하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갖춘 한국형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통령이 최근 순방한 에티오피아·우간다·케냐에서 보건 차량, 음식 차량, 문화 차량, 지원 차량 등으로 이뤄진 코리아 에이드를 시범 실시했다. 음식은 비빔밥 등 쌀을 위주로, 문화는 평창올림픽과 케이팝·비보이 등의 문화 영상 중심으로, 보건은 태아 영상과 보건 키트 등을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아프리카 시범 사업은 아쉬움이 크다. 개발협력과 문화 융합이라는 주제를 이렇게밖에는 풀어낼 수 없었는지 아쉬운 것이다. 크게 세 가지가 문제라고 본다.

우선 지속 가능성과 수혜국의 주인 의식이라는 국제개발의 대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속 가능성' 원칙은 일회성 사업들에 재원을 쏟아부어서는 수혜국에 의미 있는 변화가 오기 힘들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이고, '수혜국 주도' 원칙은 아무리 좋은 사업도 수혜국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강요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하루 세 끼 해결하기도 힘든 곳에서 비빔밥을 먹고, 전기가 없어 인터넷은 물론 텔레비전 시청도 힘든 곳에서 K팝을 들으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동 앰뷸런스에서 건강 진단을 해주는 것이 개발협력 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둘째, 개발협력의 궁극 목표인 빈곤 탈출과 공정한 성장에도 기여하기 힘들다. 많은 나라가 개발협력에 공여국의 어젠다를 더하고, 정치·외교·경제·문화를 엮어가는 것이 국제개발의 현실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코리아 에이드는 주객이 너무 심하게 뒤집혀 있다. 차라리 솔직하게 문화 외교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올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사회가 어떻게 반응할지 우려스럽고, 우리 기업들의 비즈니스와 청년 일자리 확대에 얼마나 도움될지도 회의적이다. 개발협력을 통한 진정한 국격 상승은 비빔밥이나 K팝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들을 위해, 그리고 겸손하게 아픔을 같이 나눌 때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