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에 사는 주부 최모(35)씨는 요즘 마트에서 생선이나 과일을 살 때 포장재인 일회용 스티로폼 용기를 베란다에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최씨가 사는 아파트에서 지난달 초부터 스티로폼을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최씨는 "크기가 커 종량제 봉투가 찢어지기도 해서 차라리 한 번에 담아 버리려고 한다"며 "컵라면 용기도 재활용이 안 된다고 해 쓰레기봉투 사용이 더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서는 가전제품을 포장했던 스티로폼 박스나 아이스박스 외에는 스티로폼 배출이 전면 금지됐다.

컵라면 용기, 과일 포장재 등 이전에는 재활용품으로 분류해 버렸던 것을 일반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게 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폐스티로폼 값이 떨어지면서 재활용품 수거업체에서 스티로폼 수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돈 되는 것만 가져가고 돈이 되지 않으면 안 가져가겠다는 거냐"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스티로폼은 현행법상 재활용품으로 배출하도록 정해져 있다. 컵라면 용기 등에 재활용으로 분리 배출하라는 표시도 돼 있다.

"스티로폼은 재활용에서 제외"

지난 4월 서울 북가좌동 A아파트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체를 새로 선정했다. 기존 수거업체가 더 이상 스티로폼을 수거해가지 않겠다고 통보한 뒤로 입주민들이 불편을 겪었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선 "업체와 협의를 하든 새로 계약을 맺든 해결 방안을 찾아달라"는 말이 나왔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4월에 새로 입찰공고를 낼 땐 모든 스티로폼을 무조건 수거해가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고 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지자체가 가져가는 일반 주택과는 달리 아파트 등 대형 공동주택은 대부분 재활용 수거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업체들은 병·캔·폐지·헌옷 등을 가져가는 대신 아파트에 돈을 지급한다. 보통 한 가구당 월 1000원꼴로 400가구면 40만원을 내는 식이다.

지난해까진 업체가 아파트에 돈을 지급하고도 이익을 낼 수 있었지만 폐스티로폼 단가가 떨어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돈이 안 되는 스티로폼을 수거하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컵라면 용기나 테이프가 붙어 있는 스티로폼, 유색 스티로폼, 과일 포장재 등이 업체들의 요청에 따라 재활용품에서 일반 쓰레기가 됐다. 사실상 깨끗한 스티로폼 박스가 아니면 모두 종량제 봉투행이 된 것이다.

갑자기 바뀐 규정에 주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경기 수원에 사는 한 아파트 주민은 "처음엔 국가 정책이 바뀐 줄 알았는데 주택에 사는 친구한테 물어보니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라"며 "지금까지 재활용은 정부의 환경 정책과 관련돼 있는 줄 알았는데 업체들을 먹여 살려주는 수익성 사업이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방화동 B아파트는 3월부터 규정이 바뀌었다고 계속 안내하고 있지만 일부 주민는 여전히 스티로폼을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리고 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주민들이 재활용이 되는 줄 알고 버린 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느라 100L 종량제 봉투 사용량이 한 달 30장에서 100장으로 늘었다"며 "경비원들도 매주 재활용 쓰레기 배출일마다 쓰레기를 다시 분류하느라 고생한다"고 했다. 경기 김포의 C아파트는 작은 스티로폼을 버리지 못하게 하려고 스티로폼 수거 마대를 재활용장에서 없앴다가 주민들의 항의를 받고 다시 설치하기도 했다.

비닐을 수거해가지 않는 곳도 있다. 서울 면목동 D아파트는 비닐을 따로 가져갔던 업체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자 재활용품 수거장에 비닐 버리는 것을 금지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은 "주민들 불만이 많아 지금은 그냥 재활용품 수거장에 버리게 하고 경비원들이 따로 종량제 봉투에 담아 처리한다"고 했다.

지자체에 수거를 요청해도 해결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자체 폐스티로폼 처리장을 운영하는 마포구청은 "몇몇 아파트에서 스티로폼을 수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지금은 일반주택에서 나온 스티로폼도 다 처리하지 못하고 있어 아파트 것까지 가져가긴 어렵다"고 했다.

업체들 "스티로폼 가져가봐야 손해"

업체들은 "적자를 보면서까지 재활용품을 가져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경기 광명에서 15년 동안 폐스티로폼을 처리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작년까지 거래하던 아파트들과 계약을 다 끊었다"며 "차량비·인건비·분류비 등을 계산하면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 없다"고 했다.

스티로폼이 찬밥 신세가 된 건 유가 하락 때문이다. 재활용 업체들은 스티로폼을 압축기에 넣어 잉곳(재생원료)으로 만든 뒤 주로 중국에 수출해 왔다. 중국에서는 잉곳을 이용해 사진 액자나 건축자재용 몰딩을 만들어 미국 등으로 재수출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유가가 내려가면서 재활용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값이 더 싸졌고 미국·유럽의 수요도 줄어들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2~3년 전만 해도 스티로폼은 없어서 재활용하지 못할 정도였다.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허가업체들이 무허가업체들에 대한 단속을 요구하기도 했다. 재활용업체인 하성네이처 고희균 대표는 "3년 전 잉곳 가격이 정점을 찍었을 때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컵라면 용기도 다들 가져가려고 난리였다"고 했다.

잉곳에도 등급이 있다. 희고 두꺼운 스티로폼으로 만든 잉곳이 최상품, 컵라면 용기처럼 색깔이 있는 스티로폼으로 만든 건 하품이다. 잉곳 가격이 높을 땐 컵라면 용기라도 이물질을 걷어내고 재활용하면 이익이 났지만 요새는 최상급 잉곳도 겨우 인건비를 건질 정도다. 잉곳 가격은 2014년 ㎏당 789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해 지난달에는 ㎏당 406원에 거래됐다. 업계에서는 잉곳 가격이 500원 이상이어야 이윤이 남는다고 보고 있다.

소규모 업체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스티로폼 처리 시설도 부족해졌다. 재활용 수거업체에 돈을 주고 폐스티로폼을 사왔던 한 업체는 "지금은 오히려 돈을 받고 처리해준다"며 "잉곳 가격이 올라가지 않으면 앞으로 스티로폼을 가져가지 않는 곳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13년 전으로 돌아가나

스티로폼이 본격적으로 재활용되기 시작한 건 2003년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나서다. 재활용이 거의 되지 않았던 컵라면 용기, 스티로폼 접시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 부담금을 내고 대신 재활용 업체에선 지원금을 받게 됐다. 당시 환경 당국은 "국가적으로는 매립·소각을 감소시켜 환경을 보호하고 소비자들은 종량제 봉투값을 절약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홍보했다.

재활용 업체들이 받는 지원금은 매년 달라진다. 환경 공익법인인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서 매년 재활용품 종류별 지원금을 결정하는데, 스티로폼은 재활용이 잘된다는 이유로 비교적 낮은 지원금이 책정돼 왔다. 현재 컵라면 등을 만드는 발포스티로폼에는 ㎏당 241원의 지원금이 책정돼 있다. 1994년 21%에 머물렀던 스티로폼의 재활용률은 2012년 76.2%까지 올라갔다. 독일(97.2%)과 일본(88%)에 이어 세계 3위다.

업계에선 이번 스티로폼 수거 거부 사태를 두고 "(법 시행 이전인) 2003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지원금을 받아도 수익이 나지 않아 상태가 좋은 스티로폼을 제외하곤 쓰레기로 묻히거나 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용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논의 중이지만 기본적으로 폐기물 재활용은 지자체의 의무"라고 했다. 지자체들은 비용 등의 문제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사회연구소장은 "재활용은 환경보호를 위한 것인데 돈이 될 땐 재활용하고 돈이 안 되면 안 하는 식이 돼서는 안 된다"며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스티로폼 등을 가져가게 하거나 민간사업자를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생산자 재활용을 의무화하자는 의견도 등장하고 있다. 스티로폼 재활용률 1위인 독일은 생산자가 의무적으로 재활용 폐기물을 수거해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