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용산구의 한 수입차 매장. 차량 성능과 가격을 묻는 손님에게 판매 직원은 "우리 매장에서 차를 사면 선팅과 블랙박스는 서비스로 해 드리겠다"고 했다. 이 직원은 "불법 선팅을 조장하는 것은 잘못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외제차와 국산차를 불문하고 모든 자동차 판매사원이 선팅을 공짜로 해주고 있는데, 우리만 안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규정을 위반한 짙은 선팅은 신차 구매 단계부터 일반화돼 있다. 본지가 지난달 전국의 자동차 소유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내 차량에 선팅을 했다"는 응답이 84%에 달했다. 선팅을 한 차량 소유주 가운데 절반 이상인 56.6%는 "자동차 영업사원이 무료로 선팅을 해줬다"고 답했다. "이미 선팅돼 있는 중고차를 구매했다"는 응답자도 25.7%였다. 차량 소유주가 자발적으로 선팅을 했다는 응답은 17.7%에 그쳤다. 선팅한 차량 소유자 5명 중 4명꼴로 본인의 적극적인 의사 없이 선팅을 하고 있는 셈이다.

29일 오후 서울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 인근의 선팅 공업사들 앞에 선팅 작업 중인 차량이 주차돼 있다. 중고차 매매단지로 유명한 이 지역에만 수십 개의 선팅 공업사가 형형색색의 광고를 내걸고 성업 중이다.

[[키워드 정보] 가시광선이란 무엇인가]

차량 정비를 담당하는 공업사들도 불법 선팅을 부추기기는 마찬가지다. 취재진은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공업사를 찾아가 선팅을 의뢰했다. 이 업체 사장은 취재진에게 "우리 집에서 (차량) 선팅한 손님 중에 (단속에) 걸린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안심시켰다. "뒷좌석에 주로 어린아이가 탄다"고 하자 이 사장은 "아이가 눈이 부실 것"이라며 뒷좌석 옆유리에 가시광선 투과율 5%짜리 선팅지를 추천했다. 가시광선 투과율 5%는 신문지(11%)보다 더 낮은 것이다.

주요 선팅 필름 제조업체들은 TV나 DMB 광고 등을 통해 자사 제품의 자외선·열 차단 효과 등을 광고하고 있다. 이들이 광고하는 제품 상당수가 정부 기준보다 선팅 농도가 짙다. 불법 제품을 버젓이 광고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 광고들은 정확한 정부의 선팅 규제 기준이나 짙은 선팅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업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도로교통법 기준에 준하지 않는 사양의 제품을 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모든 결과 및 그에 따른 책임은 전적으로 차량 소유주에게 있다"는 문구를 적어놓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자동차는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차 유리는 물론 부동액과 각종 세정액 같은 작은 용품까지 모두 일정한 검사를 통과해야 판매할 수 있다. 안전검사 대상 공산품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팅 필름은 안전검사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선팅 필름에 대해서는 안전 기준 자체가 없다 보니 선팅 광고에도 안전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라며 "선팅은 불필요한 규제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안전이 무시당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교통 선진국의 경우 차주가 법규를 위반한 선팅 시공을 요구해도 업체에서 시공을 해주지 않는다. 선팅한 차주뿐 아니라 시공한 업체도 처벌받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사는 최정윤(46)씨는 "일조량이 많은 플로리다에서도 차량 10대 중 4대 정도만 선팅을 하고 있고, 규정을 위반하는 선팅을 요구하면 업자가 거절한다"고 했다.

일본 경찰은 지난 2005년 3월 짙은 선팅으로 신고를 당한 운전자를 단속하며 이 차량에 선팅지를 판매·시공한 업자까지 도로운송차량법 위반으로 입건했다. 독일에 거주했던 김석기(34)씨는 "독일에서는 차량에 대한 모든 수정 사항(부품 교체부터 차 유리 선팅까지 모두 기재)을 검사받아야 하고, 그 서류를 자동차등록증처럼 항상 소지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짙은 선팅을 쉽게 통제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