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수행기사 일을 하고 있는 A(31)씨는 지난달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중견기업 사장의 수행기사직 면접을 치렀다. 사장을 승용차 뒷좌석에 태우고 도로 주행을 하면서 치른 면접에서 A씨는 "제대로 인격 모독을 당했다"고 했다. 사장이 처음 보자마자 반말을 했고 좌회전·우회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A씨는 "내가 운전하는 동안 사장이 뒷좌석에서 발을 뻗어 머리와 얼굴을 툭툭 쳤다"며 "그 사람 밑에서 일하던 수행기사들이 왜 하루가 멀다 하고 그만두는지 알겠더라"고 했다. A씨는 이 회사 취직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고 있다.

몇몇 재벌이 수행기사를 상대로 횡포를 부린 사실이 잇따라 폭로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이 때문에 수행기사라는 직업이 어떤 일인지 조금 알려졌으나 현직 수행기사들은 입을 모아 "최근 알려진 일들은 새 발의 피"라고 말했다. 일부 사장은 기사에게 폭언이나 욕설은 물론 하인 취급도 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수행기사 9년차인 B(36)씨는 오전 5시에 '대장'이 사는 경기 판교로 출근한다고 했다. '대장'은 수행기사들 사이에서 뒷좌석에 태우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다. 기사들끼리 만나 얘기할 때 '그분'의 신상이나 직급을 밝히지 않기 위해서다. B씨는 출근이 이르지만 빨리 퇴근하지도 못한다. B씨의 대장은 중견기업 오너인 50대 남자로 일주일에 5일쯤 술자리를 갖는다. 이때마다 B씨는 새벽 1시 넘어 퇴근한다. B씨는 "대장이 술에 취해 내가 기다리는 사실을 잊고 택시로 집에 가버려서 새벽 3~4시까지 혼자 기다린 적이 여러 번 있다"고 했다. B씨는 "그럴 때 대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왜 멍청하게 혼자 기다리냐'고 하기에 하루는 새벽 2시쯤 알아서 퇴근했더니 '왜 말도 안 하고 갔냐'고 했다"고 말했다.

수행기사 16년차라는 C(46)씨는 "룸미러는 당연히 빼놓고 백미러도 초보가 아니면 안 쓴다"며 "(대장이) 뒤에서 뭐 하는지 보이면 불편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씨는 "나는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꾼다"고 했다. 대장이 뒤에서 자고 있다가 깜빡이 소리에 깨면 심기를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중견기업 오너의 수행기사 D(41)씨는 "2년 정도 일했는데 욕설을 듣지 않은 날을 손에 꼽을 정도"라며 "골프장에서 가방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 주먹으로 얻어맞은 적도 있다"고 했다.

휴가나 쉬는 날도 제대로 없다고 한다. A씨는 "이전에 일했던 한 회사 사장은 '한 달에 1주일 정도 중국 출장을 가니 주말 없이 주 7일을 근무하고 내 출장 때 쉬라'고 했다. 하지만 출장은 1년에 한두 번이어서 거의 매주 7일 근무를 해야 했다"고 했다. 수행기사 2년차인 E(28)씨는 "주 5일 근무는 사치이고 주 6일 근무를 해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며 "오랜만에 쉬는 날 TV가 안 나오니 고쳐달라고 부르거나 가스밸브가 고장났다며 호출당한 적도 있다"고 했다.

수행기사들은 "연봉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B씨는 "연봉 3200만원 정도의 자리가 들어오면 대개 괜찮은 대장을 만날 수 있다"며 "월급 160만~200만원에 수행기사를 구하는 사람들은 두 달 쓰고 자르는 경우가 많고 연봉 5000만원이 넘는 곳은 대장의 성질이 더럽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씨는 "한 기업 사장의 수행기사 자리는 연봉 6000만원인데 최근 두 달간 수행기사가 7번 바뀌었다"며 "결국 예전에 2년간 버텼던 수행기사에게 연봉 1000만원을 더 주겠다고 설득해 다시 채용했다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