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사나이! 많고 많지마안~ 바로 내가 사나~이 멋진 사~나이~"

어스름이 내려앉은 지난 23일, 오후 7시가 가까워 오자 서울 학동로 삼익악기 피아노 홀은 양복바지에 구두를 신고 온 40~60대 중년 남성 60여 명으로 빼곡했다.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앉아 꺼내 든 것은 새파란 표지의 군가(軍歌) 합창곡집. 이판준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의 지휘, 피아니스트 박진우·최성진의 반주에 맞춰 '멋진 사나이'를 부르는 힘찬 노랫소리는 실내를 달궜다. 노래만으로 나라 사랑과 이웃 봉사를 전파하는 '대한민국군가합창단'(단장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의 연습 현장이다.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지난해‘6·25전쟁 65주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군가합창단이‘전우야 잘 자라’를 불렀을 때 참석한 노병(老兵)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삼익악기 피아노 홀에 모인 단원들이 목청 높여 군가‘진짜 사나이’를 부르고 있다.

4년 전 어느 날,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홍두승 교수, 김종완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와 저녁을 들다가 "우리 군가 부르는 모임 한번 하자"고 즉석에서 제안했다. 처음엔 연습실이 없어서 서울 시내를 헤매며 한 달에 두 번 목청을 틔웠다. 여기에 "나비넥타이 매고 무대 한번 서보는 게 꿈"이라며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당시 합참의장)이 가세했다. 한 장관은 장관이 되면서 활동을 잠시 중단한 상태다.

직업도 소속도 제각각인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건 '군대 연줄'이었다. ROTC, 육군포병학교, 국방부 출입기자 등으로 엮인 단원은 4년 만에 80명으로 늘었다. 예비역 장성 출신이 절반이라 그들이 단 '별'을 모두 합치면 100개 가까이 된다.

정승조 전 합참의장, 김요환 전 육군참모총장, 최차규 전 공군참모총장, 이홍기·권혁순 전 3군사령관, 이호연 전 해병대사령관, 김수정 전 울산경찰청장, 권태오 전 수도군단장, 이용광 전 3군단장, 김병기 전 레바논 대사, 이서영 전 주미 국방무관, 장윤화 예비역 공군 소장, 허일회 전 65사단장, 이태우 전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김규진 전 공군 정훈감, 김민석 전 국방부 대변인, 김병조 국방대 부총장, 육정수 전 헌법재판소 대변인, 강정호 YENC 부사장, 김태우 보잉사 상무, 박병일 한국갤럽 전무, 박홍식 전 한솔PNS 사장, 배기충 대림산업 상무, 최용태 전 삼성코닝 대표, 손재경 호림C&S 대표, 부친이 육사 출신인 가수 이용씨 등이다. 임오경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감독, 이희문 여성국제조정심판은 홍보 대사다.

몸집이 불면서 연습 공간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이 선뜻 사옥 아트홀을 내주었다.

홍두승 교수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가를 불러봤을 거다. 젊은 시절, 훈련은 힘들고 고달팠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때는 아련한 추억"이라 했다. 이판준 교수는 "어려운 상황에서 전우들을 하나로 뭉쳐주는 힘, 고통을 이겨내고 드디어 해냈다는 자신감이 우러나 남성 합창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지난해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6·25전쟁 65주년 기념식', 독립기념관의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행사'에 참여해 '멋지다' '신선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다음 달 20일 오후 8시 더 케이 아트홀에서 오랫동안 고대해온 '대한민국군가합창단 창단연주회'도 연다. '멸공의 횃불' '행군의 아침' 같은 군가는 물론이고 동요 '오빠생각'과 '독도는 우리땅', 창작곡 '우리의 산하'로 레퍼토리를 넓힐 계획이다. 요즘 월요일마다 두 시간씩 맹연습한 뒤 딱 한 시간 맥주잔을 기울이고 해산한다. 최종 목표는 '1년에 두세 번씩 일선 군부대를 찾아가 불철주야 나라 지키는 병사들을 위해 위문 공연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