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변호사가 판사에게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변론(辯論)을 하는 이른바 '소정(所廷) 외 변론'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사건 관련 청탁을 받은 판사는 법원 내 신고센터에 신고하도록 제도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조 비리 근절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이는 최근 불거진 '정운호 사건'으로 무너진 사법 신뢰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법원 안팎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소정 외 변론 금지'는 판사와 변호사의 접촉 기회를 크게 제한하는 조치다. 그동안은 선임계를 낸 변호사가 재판부에 전화 등을 통해 사건 관련 의견을 피력하는 게 어느 정도 용인돼 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변호사가 법정 바깥에서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전달하면 '장외(場外) 변론'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재판 절차를 논의하는 정도를 넘는 전화 통화는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기관 정보] 대법원, 법조비리 근절책 추진]

'청탁 신고센터'는 판사가 전관(前官) 변호사나 법조 브로커, 지인 등으로부터 사건 청탁을 받았을 경우 해당 법원에 알리도록 해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대법원은 '청탁 신고'를 판사들의 자율에 맡길지 아니면 신고하지 않을 경우 징계하는 방식으로 의무화할지는 일선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내리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판사가 재판을 진행하는 도중 한쪽 상대방이 '부당한 청탁'을 해왔을 경우 다른 쪽 당사자에게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이 법조 비리 근절 대책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법원과 검찰은 1997년 의정부 법조 비리 사건과 1999년 대전 법조 비리 사건 이후 근절책을 내놓았다. 변호사가 판사실을 사사로이 출입하는 것을 제한하고, 비위 판검사에 대한 징계가 끝나기 전에는 사표 수리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법원과 검찰은 2006년 브로커 김홍수씨로부터 현직 고법부장과 검사가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이른바 '김홍수 사건' 이후엔 판검사징계위원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고, 징계 시효를 연장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국회도 2011년 변호사법을 개정해 판검사가 퇴직 직전 근무한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럼에도 '전관예우' 시비는 가시지 않고 법조 비리 사건은 끊이지 않아 왔다. 대한변협 관계자는 "전관 출신 변호사가 선임계를 내지 않고 전화 변론을 하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등 비리를 차단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법원이 최근 검토 중인 법조 비리 근절 방안은 지금까지 법원·검찰이 내놓은 방안 가운데는 가장 강도 높은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청탁 전화 신고를 제도화하거나 '전화 변론'을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는 사건 당사자들의 잘못된 '전관예우 기대 심리'를 불식시키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 발짝 더 나아가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판검사가 전관 출신 변호사와 전화 통화를 하거나 우연히 만나기만 했더라도 무조건 접촉 사실을 내부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어기면 징계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현 변호사는 "변호사가 브로커를 통해 사건 수임이나 청탁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변호사 자격을 영구 박탈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변호사 선임 비용을 선진국처럼 법률로 명확히 정해 놓으면 정운호 사건처럼 한 사건의 수임료로 수십억원을 받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