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른 백구는 주인을 잘 따르는 개였다. 멀리서라도 주인이 보이면 달려와 꼬리를 흔들어댔다. 나 같은 꼬마가 짓궂게 굴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새끼를 낳을 때만은 달랐다. 한번은 출산을 앞두고 백구가 사라졌다. 한참을 찾았더니 짚더미 구석에 새끼를 낳아놓고 웅크리고 있었다. 한겨울이라 새끼들을 따뜻한 곳으로 옮겨주려 하자 으르릉거리기까지 했다. 조심스럽게 새끼들을 옮기며 어린 마음에도 동물의 모성애와 함께 생명에 대한 경외를 느꼈다.

▶반려견 키우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련 산업도 빠른 속도로 커 가고 있다. 제품도 고급화해 40만원짜리 옷, 100만원대 개집을 파는 '펫 숍'이 백화점·마트에 줄지어 들어섰다. 반려견 전용 유모차와 카시트까지 등장했다. 한 해 50만원 내는 반려동물 보험도 나왔다. 어느 동물병원은 방사선 암 치료기를 들여올 예정이라고 한다. 농협경제연구소는 관련 산업 규모가 2020년 5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사람들의 좋은 친구, 반려동물이란?]

▶얼마 전 TV가 보여준 '강아지 공장'은 전혀 다른 끔찍한 세계였다. 번식장 주인은 강아지를 팔아 돈을 버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수컷에게 발정 유도제를 주사하고 암컷과 수컷을 억지로 교배시켰다. 수컷 정자를 빼내 암컷에게 투여했다. 개가 늙어 출산이 어려우면 제왕절개로 새끼를 꺼냈다. 이렇게 '생산'한 개는 애견 경매장을 거쳐 애견 가게에서 비싸게 팔린다. 반려견 수요가 인간의 욕심과 결합하면서 동물 학대로 이어지는 역설(逆說)이 벌어지고 있다.

▶'강아지 공장'은 우리나라 얘기만이 아닌 모양이다. 최근 영국 BBC가 은밀하게 아일랜드의 개 번식장을 찾아가 실상을 고발했다. 업자는 사료와 물쯤만 주는 최소한의 관리만 했다. 어미 개가 죽으면 쓰레기통에 버렸다. 개들은 평생 빛이 들지 않는 창고에 살다 찾아온 취재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BBC는 애견 숍에서 팔리는 강아지 3분의 1이 이런 번식장에서 태어나고 자란다고 보도했다.

▶'강아지 공장'의 실상이 알려진 지 일주일 만에 동물보호단체들과 연예인, 일반인까지 30만여명이 동물보호법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했다. 그러자 어제 정부가 '강아지 공장'을 모두 조사해 관련 법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번식장 업자가 반려동물을 함부로 수술하지 못하게 하고 불법 번식장에 매기는 벌금도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강아지 공장'뿐일까. 어디엔가 비슷한 '고양이 공장'이 있어 고양이들을 학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인간이 부리는 탐욕의 끝은 어디일지 한숨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