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 성향의 '큰손'들이 '돈줄'을 풀지 않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자금력은 공화당이 우세였는데,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로 확실시되면서 상당수 후원자가 후원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1일(현지 시각) 그동안 공화당을 후원해온 거액 기부자 50여 명을 접촉한 결과, 단지 9명만이 트럼프를 위해 돈을 내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선거 초반, 자기는 엄청난 부자이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처럼 돈을 남에게 얻어서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지난 3월까지 모은 선거자금 5000만달러(약 600억원) 가운데 4000만달러(약 480억원)는 도이체방크 등에서 트럼프가 얻은 대출이었고, 나머지 개인 재산 등을 포함해 4700만달러(약 560억원)를 선거자금으로 사용했다. 본선을 치르는 데 대략 15억달러(약 1조8000억원)나 드는 현실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당 지도부와 상의해 오는 2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첫 기금 만찬 행사도 가질 계획인데, 기존 후원자들이 강한 거부감을 보여 10억달러(약 1조1900억원) 모금 목표가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족집게' 무디스 애널리틱스 "힐러리가 이길 것"]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억만장자는 '카지노 대부' 셸던 아델슨이 처음이었다. 그는 공개적으로 1억달러(약 1190억원)를 트럼프 선거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델슨 외에는 미국의 에너지업계 재벌인 T. 분 피컨스, 뮤추얼펀드 투자로 거부가 된 포스터 프리스, 제약업계 거물인 리처드 로버츠 등이 있다. 프리스는 "트럼프가 트럭 운전사, 농부, 용접공 등 미국을 정말 움직이는 사람에게 힘을 줬다"고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반면 트럼프를 후원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 후원자는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폴 싱어, TD아메리트레이드의 설립자인 조 리케츠, 헤지펀드 투자자인 윌리엄 오번도프와 세스 클라만, 플로리다 병원업계 실력자인 마이크 페르난데스 등 10여 명이다. 이들은 지난 3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정치 외곽 단체인 '수퍼팩'을 통해 9000만달러(약 1070억원)를 낸 큰손이다. 오번도프는 "트럼프 대신 힐러리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공화당에서 손꼽히는 큰손인 석유재벌 찰스·데이비드 코크 형제도 "힐러리를 지지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만 공화당 내 주요 후원자들은 당분간 선거판을 지켜보고 최종 단계에서 마음을 정할 가능성이 크다. 한 공화당 후원자는 워싱턴타임스 등에 "트럼프는 위험하고, 힐러리는 악마"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의 사실상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선호해온 월가의 자금이 몰려들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힐러리가 지난 1~2월 받은 후원금의 33%가 월가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3월에는 월가 후원금 비중이 전체의 53%로 급증했다. 월가가 후원하던 공화당 주자가 낙마하자, 트럼프 대신 힐러리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힐러리가 월가 개혁을 외치지만, 그래도 애매모호한 트럼프보다는 거부감이 덜하고, 예측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이 일찌감치 힐러리 지지를 선언했고,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제임스 사이먼과 다이어트프로그램 '슬림 패스트' 창시자인 대니얼 에이브러햄, 변호사인 스티븐 모스턴 등도 100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힐러리에게 후원하고 있다. 영화배우인 조지 클루니는 35만달러(약 4억원)가 넘는 기부를 하면 힐러리와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개최해 하룻밤에 1500만달러(약 178억원)를 모았다.

다만, 버니 샌더스(버몬트) 연방상원 의원과의 당내 경선이 끝까지 이어지면서 지출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힐러리는 지난 3월까지 1억9000만달러(약 2260억원)에 가까운 돈을 모아 그중 1억6000만달러(약 1900억원)를 썼다. 앞으로도 캘리포니아주 경선 등이 더 남아있어 본선에 대비한 자금을 또 마련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