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한국전통조경학회 상임연구원

"학생, 바닥에 앉지 말고, 책상에서 앉아서 봐." 자원봉사를 하시는 할아버지께서 다가와 말했다. 당시 나는 도서관 서가(書架) 사이에서 바닥에 앉아 다리를 편하게 쭉 펴고서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거기엔 나밖에 없었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무의식적으로 신경질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학생 아닌데요!" 그렇게 그와 처음 만났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해설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와 재회했다. 필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된 유물을 설명하는 일을 15년째 하고 있다. 그는 나보다 1년 뒤에 자원봉사자로 들어왔다. 그는 신문기자로 정년 퇴임을 한 뒤 해설 자원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는 다소 불편했던 첫 만남을 서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게 되면서 그가 '참견쟁이 노인'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됐다. 그도 더 이상 나를 '불손한 젊은이'로 여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10년 넘게 해설 자원봉사를 함께했다.

그는 수년 전 자원봉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전철역에 몰려든 인파에 밀려서 넘어지는 사고로 크게 다쳤다. 큰 키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안내를 하던 모습을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어깨에 철심을 수십 개 박아야 했다. 회복될 때까지 6개월이 넘게 걸렸다.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작게 떨리는 손과 느릿해진 발걸음까지 예전보다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원봉사 활동을 좋아했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월급을 받는 직장이야 엄연히 정년이 있지만, 자원봉사에도 정년이 존재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의지와 열정, 애정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노년이 모두에게 찾아온다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공평함일 것이다. 백발 할아버지 자원봉사자들이 건강을 유지해서 앞으로도 박물관을 지켜주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는 올해 '겨우' 84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