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72) PD는 대한민국 사극(史劇)의 거장이자 브랜드다. '허준(1999)' '상도(2001)' '대장금(2003)' '이산(2007)' '동이(2010)'에 이르기까지 46년간 자신만의 스타일이 담긴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그가 '마의' 이후 3년 만에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로 돌아왔다. '허준' '상도'를 합작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최완규 작가와 15년 만에 다시 뭉쳤다. 조선시대 감옥인 전옥서에서 태어나 자란 옥녀(진세연)와 마포나루 상권을 장악한 조선 상단의 윤태원(고수)이 주인공이다. 문정왕후(김미숙)와 윤원형(정준호), 정난정(박주미) 등이 권력을 향한 암투를 펼친다. 옥녀를 낳다 죽은 어머니, 선대왕 독살을 둘러싼 궁녀들의 죽음, 한양 상권을 거머쥐려는 윤태원의 복수와 야망 등 여러 미스터리와 음모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옥중화'에는 '이병훈표 사극'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몇 가지 코드가 담겼다. 그의 표현대로 이영애·한효주·한지민처럼 "총명하고 선하며 밝은 이미지"를 가진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신분은 천하지만 전문적 직업의식을 갖고 있으며, 주인공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멘토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대나무숲 액션과 진달래 동산 등 탁월한 영상미를 보여주는 장면도 많다.

특히 '옥중화'는 감옥을 주무대로 삼는 신선한 발상을 보여줬다. 어둡고 무서운 죄인들 소굴이 아니라 각양각색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시장통처럼 활기찬 무대로 그려냈다. 전옥서 안에 비밀 감옥이 존재하고 그 안에 20년을 살아온 죄수(전광렬)가 있다는 설정도 흥미진진했다.

토·일 밤 10시 방송되는 MBC 드라마 ‘옥중화’의 주인공 진세연(왼쪽)과 고수. 이병훈 PD는 “이번 드라마는 실존인물이 아닌 주인공을 내세워 시청자들이 전개를 예측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각 미남' 배우 고수는 누구?]

김윤덕 기자는 "칙칙한 감옥에 생기를 콸콸 불어넣은 건 옥녀 아역을 맡은 소녀 정다빈"이라고 했다. 인형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아이스크림 광고에 등장해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스크림 소녀'로 불리는 그는 감옥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하며 죄인들을 통해 영악하게 사는 법을 터득해가는 연기를 해냈다. 2회 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4회부터 성인 연기자 진세연이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전옥서를 빠져나오게 된다. 옥녀가 어머니의 비밀을 풀기 위해 체탐인(첩보원)이 되기 때문. 액션은 화려해졌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감옥보다 더 어두워졌고 전개는 늘어진다. 양지호 기자는 "사극 마니아인 어머니가 '귀엽고 예쁜 아역이 안 나오니 그만 보겠다'며 채널을 돌려버렸다"고 했다.

뭐든지 잘 외우는 천재 소녀였던 옥녀가 갑자기 전사(戰士)가 되어 거친 액션을 선보이는 것도 어색하다. 최수현 기자는 "진세연은 흠씬 두들겨 맞아도, 물속에 얼굴을 처박는 고문을 당해도 그저 예쁜 표정만 지을 뿐"이라며 "거구의 남성들과 싸울 때도 강단 있어 보이기는커녕 금방 주저앉아 울 것 같다"고 했다. 남자 주인공 윤태원도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아 별 매력이 안 보인다.

김윤덕 기자는 "그래도 계속 진화하는 사극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병훈 사극'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왕실 권력층 중심의 역사에서 탈피해 허준의 내의원, 대장금의 수랏간처럼 평범하지만 치열하고 바르게 살아가던 옛사람의 일상을 정교하고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 '옥중화'에서도 나중엔 남녀 주인공이 조선시대 변호사 제도인 외지부(外知部)를 배경으로 고군분투를 펼칠 예정이다.

드라마 시작 전 이병훈 PD는 "시청자들이 '이전 드라마와 똑같다, 예상 가능하다'고 말하는 걸 안다. '저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반짝반짝하네'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다. 이 '뻔한 사극'이 어디로 흘러갈지, 진세연과 고수는 극을 끌고 갈 힘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일단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는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