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유럽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모두 연고주의(緣故主義)가 작용한다. 연고는 정리(情理)에서 나온다. 인간사에는 논리(論理)도 있지만 정리도 또한 있는 것이다. 세상 경험이 늘어날수록 논리보다는 정리가 더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겉으로 이야기할 때는 논리를 앞세우지만 실상 이면을 파고들어가 보면 정리가 더 크게 비중을 차지한다. 필자의 주관적인 경험에서 보자면 한국 사회에서는 정리가 7할 논리가 3할 정도나 될까. 유럽이나 아시아는 문화권의 차이에 따라 이 비율이 아마 다를 것이다.

정리(情理)를 인수분해하여 보면 4가지 인연이 있다. 지연(地緣), 혈연(血緣), 학연(學緣), 관연(官緣)이다. 조선시대 당쟁이나 반정(反正)·반란 사건을 보면 이 4가지 인연이 그물코처럼 얽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목숨을 거는 사건에는 특히 그렇다. 1728년 남인과 소론이 연합하여 집권 노론당의 영조(英祖) 정권을 뒤엎으려고 했던 사건이 무신난(戊申亂)이다. 무신난에 같이 참여했던 거창의 명문거족이었던 정희량과 나주의 명문 부잣집이었던 나주나씨(羅州羅氏) 집안은 혼사로 얽힌 사돈 집안이었다. 임진왜란 이전 윗대부터 학문적인 교류가 있었고 이념적인 노선도 같았다. 조선시대 나주는 전라도의 재벌이 살았던 돈 많은 동네였는데, 이 나주 명문가들이 당시 야당이었던 남인에 소속된 경우가 많았다. 즉 퇴계학파였다는 말이다. 거창 정희량과 나주의 나숭곤이 혈연과 학연으로 엮여 있었다. 청주에서 병력을 동원한 이인좌의 외조부가 문경(聞慶) 일대의 거부였던 조하주(남인)였고, 조하주의 손자인 조세추가 무신난에 적극 가담하였다. 조하주의 처남이 바로 성호 이익이다. 피 튀겼던 당쟁도 파고들어가면 지연, 혈연,학연, 관연으로 얽혀 있다.

현재 한국의 주류사회는 '경상도'라고 하는 지연, '재벌'이라고 하는 혈연, '서울대' 출신이라고 하는 학연, 그리고 '고시 합격'이라고 하는 관연으로 얽혀 있다. 어느 사회나 연고주의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정도 문제는 있다. 이게 너무 심하면 사회가 자유로움과 활력을 잃고 썩어 버린다. 위험 수준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