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지도 | 최승필 지음 | 헤이북스 | 400쪽 | 1만7900원

여기 초코파이가 하나 있다. 욕심 많은 형제, 경하와 경훈이가 나눠야 한다. 가장 공평(公平)하게 나누는 방법은 뭘까. 경하가 자르고 경훈이에게 선택권을 먼저 준다면 경하는 최대한 똑같이 자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순서를 바꿔도 마찬가지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승필(48) 교수는 "사회에서 상호 협력적 합의하에 각자가 동등하게 권리를 행사한다면 가장 정의로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법 철학자 존 롤스의 사회적 정의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딱딱하거나 실용서거나. 거칠게 나누면 지금까지 국내의 법 관련 서적들은 둘 중 하나였다. '한국법철학과 법해석론' 등의 대학 교과서 같은 제목이거나 '돈 되는 부동산 법률 여행' 등 현실 생활의 활용을 목적으로 하는. 최 교수의 '법의 지도'는 그 격차를 극복해보려는 법 전문가의 시도다. 내비게이션이 아닌 지도(地圖)임에 주목할 것. 전체 좌표에서 우리의 현위치 그리고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한 나침반으로서 역할이다. '세상의 질서를 찾아가는 합의의 발견'이라는 차원에서 법(法)을 정의하고, 구체적 사례를 인용해 입체적 지도를 그려나간다. 아직 대중 입문서가 취약한 이 분야에서는 의미 있고 중요한 시도로 보인다.

최 교수는 독일 율리우스-막시밀리안대학에서 경제공법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은행에서 10여년 기업 분석·외채 등을 담당하다가 대학으로 왔다. 시장에서의 규제와 책임, 이해와 충돌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다.

최근 불거진 폴크스바겐 디젤 자동차의 매연 검사 결과 조작이 '규제와 책임'이라는 장(章)을 설명하기 위한 구체적 사례다. 180억달러(약 21조원)라는 천문학적 벌금. 아무리 징벌적 손해배상이라지만 도대체 미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숫자가 가능할까. 결국은 사전 규제가 많으면 사후 과징금이 적고, 규제가 거의 없으면 반대로 잘못했을 경우 무한책임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규제가 많은 대신 징벌이 약하다. 국내 자동차관리법상 과징금 상한액은 10억원. 자동차 업체가 신고한 연비와 출고된 차량 연비가 ±5%를 벗어난 경우라 할지라도 이 숫자를 넘을 수는 없다. 한쪽만이 옳을까.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 민간의 책임을 강화해 국가 개입 없이도 피해자에게 충분히 보상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사전에 강하게 통제할 것인가.

완벽한 법은 없지만, 최선의 법은 존재한다.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법을 이해해야 한다는 게 최승필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는 왜 법을 만들고 스스로 법에 구속되는가.

이해와 충돌의 조율이라는 '법'의 본질은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 휴업의 소송 사례로 소개한다. 1심, 2심, 3심이 연속해서 뒤집혔던 최근의 사건이다. 1심 서울행정법원에서는 마트가 아니라 구청의 손을 들어줬고, 2심 고등법원에서는 대형마트 편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다시 뒤집힌 것. 대형마트의 강제 휴업이 전통 시장 매출 상승에 도움이 됐다는 구청의 주장, 전통 시장 매출 감소는 온라인 쇼핑과 편의점 탓도 있으며, 근본적으로는 전통 시장이 바뀌어야 소비자가 찾는다는 대형마트의 논리, 그리고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충돌을 조율하는 법의 본질이 자세하고 친절하게 소개된다.

최 교수는 정의에는 1급과 2급이 있다고 했다. 재판을 통해서 얻은 것은 1급 정의(First Class Justice), 재판 도중 합의한 경우를 포함해 중재를 통해 얻은 것은 2급 정의(Second Class Justice). 근대 영국 리버풀이나 독일 함부르크 등 항구의 상인들에게 이 법률 용어의 기원이 있다. 외국에서 들어온 물건을 팔아 현금을 만들고 그 현금을 다음 장사에 투입해야 하는데, 분쟁이 생겨 자금 순환이 끊어지면 치명적이었다는 것. 빠른 분쟁 해결 절차로서 고안된 것이 '중재'라는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경험 명제도 그 한 예다. 그리고 상업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도 물론 아닐 것이다.

가속화하는 세상의 변화 속에서 법의 적응과 대응이 궁금한 독자라면 3부를 볼 것. 레저용 드론은 59m 이하에서, 상업용 드론은 60~122m, 그 이상은 비행할 수 없게 하자는 무인비행체법 제안과 빅데이터와 개인 정보의 보호, 3D프린터와 사물인터넷을 법으로는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법을 떠올릴 때 흔히 계약서를 쓰거나 형벌을 받는 일만을 생각한다. 최 교수는 "이런 제한적 생각들이 법은 멀리 있는 것이고, 특정인만이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 친절한 법 지도와 함께라면 권리와 책임의 균형 감각 있는 항해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