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올해 말부터 공익법인이 보유한 기본 재산(원금)도 공익사업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공익법인은 원금은 무조건 보존하고, 투자 수익으로만 사회 공헌 활동을 하도록 규제를 받았다. 금리가 연 20%를 웃돌던 지난 1976년 만들어진 이 규제는 금리가 1%대까지 떨어진 현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낡은 규제'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회는 19일 본회의를 열어 기본 재산의 일부를 장학금 지급 등 공익법인의 고유 목적 사업에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익법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재석 의원 222명 중 215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정부가 국무회의를 거쳐 개정안을 공포하면 6개월의 유예 기간을 거친 후 이르면 올해 말부터 시행된다. 19대 국회에서 공익법인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정안은 투자 수익 감소로 공익사업을 시행하기 어려운 공익법인의 경우 주무 관청의 허가를 거쳐 원금의 일부를 사회 공헌 활동에 쓸 수 있도록 했다. 투자 수익의 80% 이상을 공익사업에 쓰는 성실 공익법인은 주무 관청의 허가를 받을 필요 없이 신고만으로 원금의 10%까지 고유 목적 사업에 쓸 수 있다. 다만 지나친 원금 훼손을 막기 위해 3년에 한 번으로 제한을 뒀다.

공익법인 관계자들은 "'원금 보존' 규제가 일부 풀린 건 반가운 일이지만 공익법인 규제 완화를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입장이다. 이날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종료됨에 따라 국회에 제출돼 있던 공익법인 관련 다른 법안 6개는 자동 폐기됐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넘게 기부하면 증여세를 물리는 현행 상속·증여세법이 이번 국회가 처리하지 못한 대표적 규제다. 주식에 대한 비과세(非課稅) 상한선이 5%로 정해진 건 지난 1994년이다. 일부 대기업 집단 오너들이 계열사를 우회 지배할 목적으로 각종 공익법인을 활용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공익법인에 대한 감시 방안이 많아진 지금은 이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은 총 지분의 20%, 일본은 50%까지 세금 없이 주식을 기부할 수 있고, 독일과 영국엔 이런 제한 자체가 없다.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공익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제한 민법도 문제로 지적된다. 담당 공무원이 마음먹기에 따라 법인 설립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법안은 지난 17대 국회부터 매번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한 번도 처리되지 못했다. 윤철홍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특별히 표(票)를 모을 수 있는 법안들이 아니다 보니 의원들이 발의만 해놓고 정작 법안 처리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며 "시민 사회가 발전할수록 공익법인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20대 국회에선 의원들이 더 적극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번 개정안으로 공익법인이 원금을 쓸 수 있게 됐지만 주무 관청의 '허가'를 받도록 한 점은 독소 조항으로 지적된다. 자기가 담당하는 업무에서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을 꺼리는 공무원들이 원금 사용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태규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이 매년 공익법인 원금의 5% 이상을 공익사업에 사용하도록 의무화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공무원이 간섭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명문화(明文化)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