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도심에 자리 잡은 1500병상 규모의 대형 병원 탄톡셍 병원. 이곳 입원 환자 가족은 입원 병동 입구에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가족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 가능한 가족 수는 환자 한 명당 1~2명이고, 그들에게만 병동 출입 전자카드가 제공된다. 병동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입구에는 국내 지하철 출입구 같은 통과 장치가 있어, 가족 카드를 갖다 대야 출입문이 열린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대혼란을 겪은 싱가포르 병원들은 이처럼 면회객이나 환자 가족이 입원 병동 출입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외부 감염원 유입 차단과 내부 감염 관리를 위한 조치다.

선진국 병원, 면회객 출입 통제

일본, 미국 병원도 면회객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일본 도쿄 시내 800병상 규모의 국립 글로벌헬스 의학 병원은 외래와 입원 환자들이 있는 병동을 완전히 분리했다. 신분증을 보이고 등록을 한 후, 출입 카드를 받아 병동 입구 슬라이딩 도어에 갖다 대야 병동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병원의 감염병센터 노리오 오마가리 소장은 "사스나 에볼라 사태 이후 감염병 우려가 커져 외부인의 병동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인 출입 통제로 감염 관리를 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사진은 삼성서울병원이 모든 병동 입구에 마련한 슬라이딩 도어로, 입원 환자 한 명당 가족 한명에게만 주어지는 출입 카드를 접촉해야 열린다.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학병원은 외래를 제외하고 외부 방문자가 병동·연구실을 찾을 때는 반드시 등록 신고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제시하면, 병원 직원이 현장에서 스캔해 즉석에서 방문자 사진과 이름이 들어간 접착 스티커를 옷 상단 눈에 띄는 곳에 붙인다. 미국 병원에서는 밤 9시 이후 면회를 금지하고, 환자들도 병실 밖을 돌아다니지 말도록 계도하고 있다. 감염 관리와 환자 숙면을 위해서다.

한국 병원, 병동에 자유자재 출입

20일은 국내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메르스가 우리나라에 대형 쇼크를 안긴 데는 후진적인 병문안 문화가 있었다. 국내 병원들이 선진국 병원처럼 출입자 통제를 했다면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감염자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었다. 메르스 감염자 총 186명 중 73명(39%)이 가족, 면회객, 간병객 등이었다. 병원 환자로 있다가 메르스에 감염된 82명과 맞먹는 규모다. '2015 한국 메르스'는 지역사회 전파가 아닌, 철저히 병원 감염 형태로 전파됐음에도, 메르스 환자 10명 중 4명이 병원 밖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병원 감염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후진적인 병문안 문화와 허술한 출입 통제 체계는 여전하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 로비. 외래 환자들과 병문안 온 면회객이 엘리베이터 앞에 뒤섞여 길게 줄을 서고 있다. 면회 시간이 아닌데도 방문 통제 요원을 찾아 볼 수 없다. 병원 관계자는 "몇 번 통제를 시도했다가 실랑이만 벌어져 지금은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이란?]

암 환자들이 많은 대형 병원 입원 환자 병동 휴게실에는 "○○ 먹고 깨끗이 나았다더라" 식으로 광고하는 건강식품 판매원들이 면회객을 가장해 수시로 들락거린다. 밤 9시 이후에도 술 냄새를 풍기며 입원 환자 병문안을 오는 친지들이 여전히 있고, 대개 환자당 면회객 수도 제한되지 않는다. 병실 곳곳에 교인들이 몰려와 찬송·찬불가를 부르는 일도 예사다. 한림대의대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인플루엔자 독감 시즌에 면회객 때문에 입원 환자들이 독감에 걸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혼잡한 병문안 면회 문화를 그대로 두고는 제2 메르스 사태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병원 면회 제한, 환자도 반겨

지난해 메르스 사태 진원지였던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4월부터 모든 병동 입구에 출입 카드를 대야 문이 열리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다. 그러고는 입원 환자 한 명당 가족 한 명에게만 출입 카드를 발부했다. 그 밖의 면회를 원하는 가족이나 친지는 오후 6~8시 사이에만 병동에서 면회할 수 있다. 그러자 병동에 외부인 출입이 줄면서 감염 관리가 잘 이뤄지고 있다. 병원 주차장 이용 차량 수도 10% 정도 줄었다. 그만큼 병원 방문에 허수가 많았다는 의미다. 응급실도 보호자 한 명에게만 응급실 출입 카드를 발부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환자와 가족 2명에게만 병동 엘리베이터 출입 카드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병동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개선 작업에 곧 들어간다. 양산 부산대병원은 병원 로비와 병동에 면회실을 별도로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면회객이 오면 가능한 한 병실로 들어가지 않도록 유도하고 면회실에서 만나도록 한다. 승기배 서울성모병원장은 "정부와 병원은 전문적인 감염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환자와 일반 국민은 병문안과 면회 문화를 바꾸는 데 협조해야 병원 밖 사람이 대거 병원 감염이 되는 메르스 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