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를 놓고 진화심리학에선 선천적이라고 판단하지만, 정통 심리학에선 후천적이라고 본다. 내 소설은 두 입장을 종합해서 한 개인이 사이코패스라는 '별종(別種)이 되는 기원'을 탐구한 것이다."

소설가 정유정이 신작 장편 '종의 기원'(은행나무)을 냈다. 초판을 요즘 한국 소설로는 보기 드물게 5만부나 찍었다고 한다. 그녀의 전작 '7년의 밤'이 40만부, '28'이 20만부 판매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7년의 밤'은 독일어로 번역돼 지난해 현지에선 권위 있는 '차이트 추리 문학 추천리스트'에 한국소설로는 처음 올랐다.

작가 정유정은“3년 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일 동안 홀로 걸으며 소설‘종의 기원’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소설가 정유정은 누구?]

[[키워드 정보] 사이코패스란?]

소설 '종의 기원'은 심리 스릴러에 속한다. 발작 증세를 앓던 주인공이 스스로 사이코패스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과정을 불안하고 긴장된 심리 묘사로 그려냈다. 사이코패스가 '나'로 등장해 살인범이면서도 제 범행을 규명하는 수사관이기도 하고, 운명에 맞서 자신을 옹호하는 변호인 역할까지 도맡았다. 이런 주인공을 문학 비평에선 흔히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고 한다. 작가는 "주인공이 자기합리화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유예하지만, 진실에 가깝게 그럴 듯한 자기 변론도 펼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 소설은 사흘 동안에 일어난 연쇄 살인을 다루면서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켰기 때문에 이야기의 밀도가 높다. 정유정은 사이코패스를 연구한 진화심리학 서적을 탐독한 끝에 소설을 쓰면서 다윈의 책 '종의 기원'을 제목에 차용했다. 정신과의사와 프로파일러를 찾아다니며 취재하기도 했다. 작가는 "사이코패스는 도덕성과 인내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에 자극을 주면 정상인과는 달리 별 반응이 없다는 것이 MRI로 확인됐다"며 "사이코패스는 거짓말을 할 때 땀을 흘리지 않고, 심장 박동이 높아지지도 않는데, 살인을 섹스처럼 쾌락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소설 속의 시간을 사흘로 제한한 것에 대해 작가는 "주인공의 내면으로 들어가 악이 어떻게 시작해 진화하는가 보여주려고 했기 때문에 최소한도의 시간과 공간만 필요했다"라며 "나는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을 쓴 게 아니라 사이코패스가 겪는 생존 게임을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작가와 독자 모두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가운데 주인공이 왜 범인인지 밝히는 과정을 통해 서스펜스를 높이려 했다. 나는 소설을 쓸 때 반전(反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반전은 하수(下手)나 쓰는 기법이다."

이 소설의 특징은 전반부가 가해자의 육성으로 진행되지만, 뒤로 갈수록 피살자의 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초반부의 오해와 착각이 풀린다는 것. 서서히 '작가가 친절하게 설명한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는 "내 소설치고는 설명이 많은 편"이라면서 "사이코패스를 판정하는 의학적 설명처럼 묘사의 한계가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설이 사이코패스의 존속살인을 다뤘기 때문에 일부 독자는 처음부터 불편할 수도 있다. 작가는 "나는 원래 불편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라며 "인간을 벼랑 끝까지 몰아넣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는 소설이 인간 속에 내재된 악을 외면하지 않음으로써 인간 이해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