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석 경제부 기자

[[키워드 정보] 지역총생산(GRDP)이란 무엇인가]

가미시호로(上士幌)는 일본 홋카이도 중심부의 다이세쓰(大雪)산을 끼고 있는 관광지다. 5000명만 살고 있는 작은 지방자치단체다. 그래도 한 해 '고향세(稅)'로만 100억원 넘는 추가 세수(稅收)를 거둔다. 이 돈으로 연간 GRDP(지역총생산)를 70억원가량으로 끌어올리고, 80여 명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한다.

고향세란 특정 지자체에 기부한 사람에게 기부금에서 2000엔을 뺀 액수만큼 소득공제를 해주는 제도다. 대개 도시 사람이 어릴 적 살던 고향에 기부금을 낸다. 그러면 기부받은 지자체는 지역 특산물을 답례품으로 보내준다. 세금 혜택은 기본이고 선물도 챙길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일본 전역에서 작년 한 해 1조6000억원 넘는 고향세가 대도시에서 지방 각지로 뿌려졌다.

고향세는 인구 감소로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농어촌을 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가 내놓은 기발한 아이디어다. 2008년 처음 등장했을 때는 호응이 저조했다. 하지만 세금 혜택을 늘리고, 답례품이 고급스러워지면서 갈수록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시모노세키는 1만엔 이상 기부자에게 수족관 관람권을 보내주다가 3만엔 이상 구간을 신설해 싱싱한 자주복 회를 보내준다. 그렇게 해서 고향세 수입을 대폭 늘렸다. 육류, 야채, 과일, 술, 유제품 등이 답례품으로 인기를 끈다. 명소 무료 관람권을 보내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지자체가 여럿이고, 지역 동물원 내 원숭이 작명권을 주는 독특한 마케팅도 등장했다.

고향세를 안내하는 포털 사이트 '후루사토(고향) 초이스'는 전국 지자체가 제공하는 6만3000가지 답례품 정보를 소개한다. 답례품을 '쇼핑'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다. 페이지뷰가 매달 1억건이 넘는다. 일본 정부도 흥행을 돕기 위해 세심하게 세제(稅制)를 설계했다. 문화재 보존이나 일자리 창출 등 고향세 용도를 기부자가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신용카드 납부도 가능하다.

고향세가 자리 잡으면서 답례품용 농축산물 소비까지 덩달아 왕성해졌다. 도농(都農) 간 교류도 늘었다. 세수가 늘어 주머니가 두둑해진 지자체들은 일자리를 늘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분석했더니 고향세의 70%를 도쿄·오사카·나고야 등 3대 대도시권 주민들이 낸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에서 시골로 돈을 흘려보내 도농 간 소득 분배에 기여하는 효과를 봤다.

우리도 고향세 도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농어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일본보다 우리가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다. 농어촌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는 참담한 수준이다. 게다가 우리는 일본보다 수도(首都) 집중 현상이 심하다. 서울에 몰려 있는 돈을 지방으로 보내도록 유도하면 지역 간 소득 격차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는 기부 문화가 자리 잡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정부나 국회가 '한국형 고향세'를 추진해 우리네 고향에 생기를 불어넣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