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모(62)씨의 하루 일정은 탁구로 시작해 탁구로 끝난다. 탁구를 한번 치면 2시간을 훌쩍 넘긴다. 탁구채를 잡은 오른손에 물집이 생기고 터져도 개의치 않는다. 몇 달 전 손목터널증후군 진단을 받아 손목이 퉁퉁 부었지만, 탁구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커서 그만둘 수 없다.

단시간에 여러 운동을 강도 높게 하는 '크로스핏'을 즐기던 정모(29)씨는 어느 날 왼쪽 허벅지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근육통으로 여겼고 오히려 통증을 즐겼다. 통증이 있어야 근육이 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소변색이 콜라처럼 진해져 병원을 찾았더니 근육이 녹는 질환인 '횡문근융해증'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잘 안 쓰던 근육을 무리하게 사용한 탓"이라고 말했다.

운동 중독은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의 2~3%가 해당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상당수 사람들이 운동의 긍정적인 면(面)만을 보다보니, 중독 문제에 대해선 관대하다. 운동을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고, 통증을 즐기는 운동을 하고 있을 경우 운동 중독을 의심해야 한다.

위의 사례자들은 모두 '운동 중독'이 된 상태이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지만 운동 행위 자체에 중독돼 오히려 독(毒)이 된 경우다. 운동 중독은 특정 행위를 반복하면서 쾌락을 느끼는 행동(행위)중독의 한 종류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정영철 교수는 "운동 중독은 자신의 체력을 극한으로 몰고갈 때까지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며 "학계에서는 정기적으로 운동하는 사람 중 2~3%가 운동 중독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센터 박원하 교수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운동 중독 상태이지만,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건강 때문에 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인식하다보니, 운동 중독에 대한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운동 중독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건강하다고 자부하지만 늘 부상과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왜 운동에 중독될까?

운동에 중독되는 이유는 '뇌 속 보상회로' 때문이다. 운동을 시작한지 40~50분이 경과하면 체내에 젖산과 피로물질이 쌓이면서 통증을 느낀다. 이 때 뇌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신경전달물질인 '엔도르핀'과 '아난다마이드'를 분비한다. 이 물질은 아편과 대마초 같은 강력한 통증·피로감소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 물질은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한다.

정영철 교수는 "뇌 속에서 분비된 도파민이 주는 쾌락과 고양감을 느껴본 사람은 그 느낌을 또 원하기 때문에 더 많이 운동하고, 강한 운동 자극을 찾는다"고 말했다. 마라톤같은 격렬하고 힘든 운동을 하면서 느껴지는 쾌감과 행복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끊임없이 느끼고 싶어 운동을 하는 것 역시 중독 상태다.

◇초기에 중독 알아채 진행 막아야

운동 중독은 일반적인 중독처럼 초기, 중기, 말기의 진행을 거친다.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운동 중독 초기 때 자신이 운동 중독 상태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운동 시간과 강도를 컨트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 중독 초기=3개월 이상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 중에 운동하는 것만이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며, 다른 일에서는 크게감흥이 없을 때 운동 중독 초기가 의심된다. 운동을 거르게 되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면서 운동을 더 하고 싶다는 욕구가 증가한다. 운동을 하지 않은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운동 중독 중기=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 강한 강도의 운동을 원하고, 운동 후 통증을 느끼는 것을 즐긴다.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해야 운동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한다. 정영철 교수는 "운동을 하는 시간이 점차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도박이나 인터넷, 쇼핑 중독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운동 중독 말기=운동 중에 다쳤거나, 운동으로 인해 병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그만둘 수 없는 상태다. 이해국 교수는 "중독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졌기 때문"이라며 "스스로 운동을 중단하거나 운동량을 줄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운동 중독, 왜 위험할까

운동 중독이 위험한 이유는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운동을 적당히 하면 면역력이 높아지지만, 과도하게 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미국대학스포츠의학회(ACSM)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최대 심박수를 70% 이상 사용하는 격렬한 고강도 운동(달리기나 에어로빅 등 숨이 많이 차는 운동)을 90분 이상 할 경우 오히려 면역기능에 손상을 가져온다. 고강도 운동을 90분 이상 한 후 혈액을 채취해봤더니 1~2시간 동안 면역세포의 숫자와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면역기능을 낮추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증가했다.

부정맥 위험도 높인다. 최근 호주 심장당뇨병학회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운동 선수들을 대상으로 부정맥 중 하나인 심방세동 발병에 관한 12편의 연구결과를 분석해보니, 매일 강도 높은 운동을 하게 되면 심장에 스트레스가 생기고 맥박이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이 생길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강도의 운동이 자율신경의 불균형, 심장비대 등을 초래해 심방세동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근육 운동을 오랜 시간 과하게 하면 근육이 녹는 '횡문근융해증'이 생길 수도 있다. 최근에는 크로스핏(단시간에 여러 운동을 번갈아 하는 운동) 같은 고강도 근육운동으로 인해 횡문근융해증을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기사 더보기

내게 맞는 운동량 알려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주시하면서 운동량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신호는 통증이다. 몸에 통증이 있을 때는 운동을 더이상 하지 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맞다. 충분히 쉬고 회복한 다음에 다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스트레칭을 했을 때 통증이 있으면 그 날은 운동을 쉬었다가 통증이 가라앉는 날 다시 하는 게 좋다.

유산소 운동을 주로 한다면 1시간 이내가 가장 효율적이다. 유산소 운동은 지방 분해가 주목적이다. 빠르게 걷기를 1시간 이내로 한다. 1시간 이상 하면 근육이 손실된다. 심폐질환이 있거나 심장에 위험인자가 있는 사람은 운동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 가벼운 운동은 매일 하더라도 무리가 없지만 과격한 근력 운동은 하루걸러 한 번씩 하는 것이 좋다. 근력 운동은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 운동량을 정하는 것이 도움 된다. ▷기사 더보기

운동 중독의 대표적인 부작용을 방지하려면

운동 중독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부상이다. 척추·관절·인대·근육 등을 준비 운동 없이 과도하게 쓰면 어깨·팔꿈치·허리·무릎·발목에 각종 부상을 당하기 쉽다.

운동을 무리하게 할 때 잘 생기는 신체 부위별 질환과 예방법을 알아본다.

무리한 운동으로 관절·인대·힘줄·근육을 과사용하면 어깨, 손목, 허리 등에 부상을 당하기 쉽다.

◇어깨: 회전근개파열·어깨충돌증후군

원인: 야구, 수영 등 팔을 90도 이상 크게 들어 올리는 동작을 과도하게 할 경우 어깨 부상을 당하기 쉽다. 어깨의 인대·근육·힘줄이 뼈·관절과 자꾸 충돌해 염증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방법:운동 전 어깨 관절을 충분히 풀어줘야 한다. 어깨 앞뒤로 돌리기, 깍지 끼고 기지개 켜기, 양팔 들어 뒤로 젖히기 등을 5~10회씩 반복하는 것이 좋다.

◇팔꿈치: 테니스엘보·골프엘보

원인: 테니스·배드민턴·골프 등 손목·손가락을 많이 쓰는 운동을 과도하게 하면 잘 생긴다. 팔꿈치에는 손목·손가락 근육을 움직이는 힘줄이 붙어있어서, 손목 등을 과사용 하면 팔꿈치 힘줄이 닳는다.

예방법: 운동 전 손목을 위아래로 꺾는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공을 던지거나 라켓을 휘두를 때는 손목과 팔의 힘을 함께 써야 한다. 팔을 앞으로 곧게 펴고 손을 오그린 채 손목만 굽혔다 펴는 운동을 수시로 하는 것이 좋다.

◇허리: 염좌·근막통증후군

원인:골프·스케이트·발레·등산 중 허리를 갑자기 뒤틀거나 젖히는 동작이 문제다. 허리뼈와 디스크는 옆이나 뒤로 크게 회전하지 못하게 돼 있는데, 허리를 갑자기 비틀면 관절이 손상될 수 있다.

예방법: 운동 시 프로선수들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말고, 운동 강도를 천천히 높여가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선에서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찾아야 한다. 등산 시에는 등산용 지팡이나 스틱을 챙겨서 허리 부담을 줄이고, 허리를 최대한 세우고 걷는 것이 좋다.

◇무릎: 십자인대 파열·반월상연골 파열

원인: 마라톤·사이클 등 무릎을 굽히고 펴는 동작을 자주 하면 무릎 힘줄·인대가 뼈에 부딪히며 닳아 부상이 생긴다. 축구·농구 같은 운동 중 무릎 관절이 뒤틀리거나 다리가 앞·뒤로 강하게 꺾이면 관절·연골 등이 손상된다.

예방법: 운동 시 쿠션이 있는 신발을 신어서 무릎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이는 것이 좋다. 평소 엉덩이·허벅지·종아리 근육 등의 하체 근육을 키워 운동할 때 무릎에 가해지는 체중이 분산되도록 해야 한다.

◇발: 발목 염좌·족저근막염

원인: 달리기 등을 할 때 빠른 속도로 달리다 멈추고 다시 출발하는 과정에서 발이 지면과 맞닿으면서 발목에 부담이 가해져 근육·인대가 늘어난다. 발목이 바깥으로 휘면서 접질리기도 한다. 발바닥에 염증도 생긴다.

예방법: 평평한 곳을 달리는 것이 안전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진 길은 가급적 피한다. 목이 높은 신발이나 발목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는 운동화 등을 착용한 뒤 신발 끈을 단단히 매야 한다. 걷거나 뛸 때는 발뒤꿈치가 먼저 땅에 닿게 한 뒤 발 앞쪽으로 굴러가듯이 한다. 마라톤을 한 뒤에는 5일 정도 쉰다. ▷기사 더보기

운동은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없애는 등의 좋은 효과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하게 몰두하여 부상외에도 인간관계의 단절, 일상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운동중독으로의 변질을 주의해야 한다. 현재 하는 운동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인지, 강도는 적절한지, 과도한 운동 등으로 신체질환이 발생했는지 등을 점검하며 운동중독을 예방하는 것이 좋다.

운동을 생활화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으로 생활이 망가지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 스포츠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