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46·서울예대 문창과 교수)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맨 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의 보이드 턴킨 심사위원장은 16일 밤(현지 시각)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한 뒤 "뛰어난 작가가 많고 문학이 번창하고 있는 한국은 왕성한 소설 문화를 지니고 있다"며 "우리가 한국 문학을 더 주목한다면 매우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맨 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돼 상패를 받은 소설가 한강(오른쪽)과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

미국 하버드대에서 영문으로 발행하는 한국 문학 전문지 '아젤리아' 편집장을 맡고 있는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미국 문인들은 황순원의 단편 소설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 소설의 특징으로 시적(詩的) 문체와 서정성을 꼽았다"면서 "시인으로 출발한 한강의 소설이 바로 그런 요소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한강 소설이 서정적이면서 그와 정반대인 한국 현실의 폭력성도 드러냈기 때문에 '채식주의자'에 대한 현지 서평을 보면 대부분 '충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46)의 한자 이름은 한강(韓江). 소설가인 아버지 한승원(77)씨가 지은 이름이다. "가장 쉬운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이라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연세대 국문과 89학번이다. 졸업 연도인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이 당선되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지금까지 장편 6권, 소설집 3권, 시집 1권, 산문집 1권을 발표했으며, 다음 주에 신작 소설 '흰'이 출간된다.

부친은 소설가 한승원씨 -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씨가 17일 전남 장흥 율산마을에 있는 자택‘해산토굴’에서 잇달아 걸려오는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2005년 이상문학상, 2010년 동리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등 수상.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아버지도 이상문학상을 받은 덕에,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이상문학상 부녀 수상'의 기록을 갖고 있다. 오빠 한동림씨도 소설가이고, 남편 홍용희씨도 문학평론가(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창과 교수), 남동생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문인 집안'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세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버림받은 것들에 대한 연민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세계의 폭력에 대한 경악은 한강 소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서점엔 '한강 코너' -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본점에 설치된 한강 소설 코너. 수상 축하 알림판과 수상작‘채식주의자’가 눈길을 끈다.

[소설가 한강에 빠진 세계 문학]

남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점차 식물이 되어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2000·창비)는 이번 수상작 '채식주의자'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고, 인체를 석고로 뜨는 조각가를 통해 육체 안에 감춰진 영혼의 상처를 드러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2002·문학과지성사),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희랍어 시간'(2011·문학동네), 동리문학상을 받은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2012·문학과지성사), 죽은 자들에게 빙의하는 형식으로 1980년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창비·2014 창비) 등이 주요 작품이다.

한강의 부친 한승원씨는 "우리 딸 만세!"라며 웃었다. 그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어둔 방에서 몽상하는 것을 좋아했다"며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해서 영문과에 가라고 했는데, 굳이 소설을 쓰겠다며 국문과를 선택하더니 연세대 국문과에 수석 합격했다"고 딸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17일 오후 6시 현재, 교보문고는 '채식주의자'가 4500부 팔려 전날에 비해 22.5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서점 예스24 역시 오후 6시 현재 7000부가 팔려 전날에 비해 38배 늘어났다고 밝혔다. 교보문고 매장에서는 오후부터 일찌감치 품절 사태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