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 활동하는 가수 조영남(71)씨가 다른 사람이 대신 그린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팔았다는 '사기' 논란에 휘말렸다.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지난 16일 서울에 있는 조씨의 소속사 사무실과 조씨의 그림을 거래했던 갤러리 3곳을 압수 수색했다. 검찰은 지난 4월 8년 동안 조씨의 그림을 300점 이상 대신 그려 줬다는 A(60)씨의 제보로 수사에 착수했다.

"내가 90% 그렸다" vs "내 아이디어니 내 작품"

A씨의 주장은 그림 90%를 A씨가 그리면 조씨가 덧칠하고 사인을 넣어 조씨 작품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대신 그림 그리는 비용으로 그림 1점당 10만~2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압수수색을 받은 통의동 P 갤러리 관계자는 "조씨의 작품가는 가장 인기 있는 화투 시리즈 경우 호당 50만원 정도이고, 주로 팔리는 크기는 20~30호(1000만~1500만원)지만 거래가 많지는 않다"고 했다. 조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처음엔 내가 다 그렸지만 작업량이 많아지고 나이 들며 체력적으로 힘들어 몇 년 전부터 조수 몇 명을 썼다"며 "어디까지나 조수는 보조 역할이지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수를 쓰는 건 오래된 미술계 관행"이라고 했다.

지난 2013년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자신의 회화 작품을 배경으로 앉은 가수 조영남. 꾸준히 그림을 발표한 그가 조수의 폭로로 대화(代畵) 논란에 휩싸였다.

[조영남 대작 의혹, 미술계 관행은 면죄부?]

"작품은 작가 손으로 만들어야" vs "미술계, 조수 사용은 일반적"

대중과 미술계 사이엔 시각차가 있다. 인터넷엔 "자기가 그리지 않은 걸 어떻게 자기 작품으로 둔갑시키느냐"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상식적으로 작가의 이름을 걸고 나온 작품은 100% 작가 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논리다. 법무법인 세종 임상혁 변호사는 "조씨가 조수 고용이 미술계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해도 구매자들이 이를 '사기'라고 보면 조씨가 혐의를 벗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술계에선 "조수 고용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현대 미술의 범주에서 보면 '모든 게 예술로서 가능한 세상'이다. 조수를 쓴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다"고 했다.

현대미술 작가 중 조수 사용을 공공연하게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 영상·설치 등 작업 규모와 범주가 커지고 있고 작업을 분업화한다. 스타 작가 제프 쿤스의 뉴욕 첼시 작업실엔 120여 명의 직원이 있다. 쿤스는 기자나 비평가 등이 오면 작업실을 직접 안내하며 조수들이 작업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회화의 경우 쿤스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 다음 조수 세 명이 16~18개월 정도 매달려 완성한다.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가 영국 테이트 모던 터빈홀에서 전시한 '해바라기 씨' 설치도 혼자 힘으론 불가능했다. 1600명이 참여해 제작 기간 2년 6개월이 걸렸다. 올라퍼 엘리아슨, 애니시 카푸어 등도 직원 70~100명을 둔 기업형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작업을 분업화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조수를 '테크니션'이라 부르며 수평적 관계의 협업자로 보고 살뜰히 챙겼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폴 게린, 이정성 대표 등이 그들이다. 한 갤러리 대표는 "한 원로 회화 작가는 조수가 바뀔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어느 조수일 때가 디테일이 좋았다고까지 말할 정도다. 컬렉터도 그 정도는 알고 산다"고 했다. 물론 단색화가 정상화 화백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조수 없이 혼자의 힘으로만 완성하는 작가도 있다.

'아트테이너' 작업 태도는 문제

미술계 안에서도 조씨의 대작(代作)에 비판적인 시각은 존재한다. 조씨는 1973년 인사동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화가 겸 가수'란 뜻으로 스스로를 '화수(畵手)'라고 부른다. 예술하는 연예인인 '아트테이너(아트+엔터테이너)' 대표 주자다. 한 중견작가는 "많은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과정에서 조수를 활용하는 건데 조씨는 이름 값으로 작품을 팔면서 조수를 사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작가는 "조수가 다 그리고 마무리만 하는 작가도 많지만, 대부분 작업실에서 같이 있으면서 조수와 대화하고 교감하며 작업을 한다"며 "조씨는 서울에 있고, 조수는 속초에 있으면서 필요할 때 문자로 그리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