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드라마라고 한다. 그런데 주연이 신구(80), 나문희(75), 김혜자(74), 주현(73), 윤여정(69), 박원숙(67), 고두심(64)이다. 고현정(45)이 제일 막내다. 세 기자, 노년 멜로드라마를 표방하는 tvN '디어 마이프렌즈'를 보기 전 내심 의심했다. "이게 잘될까?" 잘됐다. 첫 회부터 시청률 5.1%(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주목 끌기에 성공했다. 1~2회를 본 세 기자 역시 그 결과에 납득했다.

"연기의 백화점이다. 별들의 전쟁이다." 아줌마 기자(김윤덕)의 말 그대로다. '시니어벤져스(시니어+어벤져스)'라는 홍보 문구가 과장이 아니었다. '연기 못하는 사람 하나 정도는 나왔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모든 장면에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호연들로 꽉꽉 채워진다.

김 기자는 "이 나이 되면 밑이 헐거워져서 그냥 나와"라는 고두심의 능청스러운 대사에 웃다가, 볼일 보기 위해 치마를 들고 뛰는 김혜자의 모습에 뭉클해졌다. 두 30대 기자(최수현·권승준)가 옆에서 거든다. "이 드라마를 보니 그동안 노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장수상회' 같은 작품들이 판타지였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 작품들이 그저 젊은이들 시점에서 상상한 노년의 인물을 묘사했다면, 이 드라마는 철저히 노년의 시점에서 치열하게 그들만의 자화상을 그려나간다. 학력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남의 집 딸 결혼에 시시콜콜 흠을 잡거나, 술 취해 한 말 또 하며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꼰대'들이지만, 오랜 삶의 풍파를 견디며 체득한 작은 지혜들로 무장한 그들 말이다. 최 기자는 "지루해 보일 것 같은 노년들 이야기를 마법처럼 흥미진진하게 만든 솜씨를 보니 왜 노희경이 위대한 작가로 불리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년 멜로’를 표방하는 드라마‘디어 마이프렌즈’는 나문희·박원숙·김혜자·김영옥·윤여정(왼쪽부터) 등 원로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디어 마이프렌즈' 집필한 노희경 작가는 누구?]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게 없어 작가의 솜씨는 더욱 빛난다. 남편을 잃은 뒤 자식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울 어머니 어찌 살까"라는 말에 자존심 상해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철부지 할머니, 홀몸으로 아이들 길러냈으면서도 1500원짜리 '콜라텍(주류를 팔지 않는 디스코텍)'에 가는 게 유일한 취미인 억척엄마 같은 인물들의 일상이 전부다. 작가는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빈자리에 인물들의 디테일을 채워 넣었다. 중졸 학력이 콤플렉스인 여자가 교양을 입에 달고 살고, 치매 걸린 할머니는 "남자들 말은 다 개소리"라고 일갈한다. 시어머니와 함께 시청한 김 기자는 "불알도 안 달린 게 차를 몬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구제불능 '마초 할배' 역의 신구에게 엄지를 추켜세웠다.

그래도 불안한지, 제작진은 젊은 시청자들을 위한 장치(라고 쓰고 '미끼'라고 읽는다)도 잊지 않았다. 극 중 화자(話者)이기도 한 고현정이 '왕년의 테리우스' 신성우와 실제로 열애설이 몇 번 불거졌던 배우 조인성과 달콤쌉싸름한 멜로 연기를 선보인다. 김혜자의 옆집 남자로 나오는 다니엘 헤니는 느끼한 '몸 연기'로 쟁쟁한 선배들의 호연 공세에 맞선다. 다만 고현정과 조인성 멜로 라인은 분량도 짧고 충분한 배경 설명이 없어 극 전체와 어울리지 못하고 튄다. 출연진들 연기 경력을 합치면 300년이라더니, 모든 장면에서 연기가 불꽃처럼 튀어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다. 주연을 받쳐주고 묶어주는 진정한 조연이 없으니, 메인요리가 뭔지 통 모르겠는 한정식 같다.

그래도 한정식만 한 진수성찬 있던가. 세 기자 모두 잘 차려진 밥상을 한껏 먹은 듯한 포만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