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유인태(68) 의원은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와 함께 공천 탈락했던 문희상 의원은 막판에 구제를 받았지만 유 의원은 구제 신청을 하지 않았다. 유 의원은 13일 본지 인터뷰에서 "의정부는 문 선배가 아니면 이길 사람이 없는 곳이고, 내가 구제 신청을 했다면 사람만 추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2년(14대) 처음 국회에 들어온 뒤 24년 만에 떠나게 된 유 의원은 후배 의원들과 요즘 정치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는 "극단적 주장과 튀는 언어를 사용해야 인기를 얻는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와 열성적 지지층에만 빠지면 정치가 천박해진다"고 말했다.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 의원은“SNS와 열성적 지지층에만 빠지면 정치가 천박해진다”고 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하는 말이 '너무 밝히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게 아니고 신문이나 방송에 얼굴 한 번 더 나오려고 튀는 행동을 하고 다른 사람을 밀치고 하는데, 정치가 그러면 천박해진다. 표를 먹고 사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라지만 염치와 도리는 있어야 한다. 내가 초선 때 장관들이 '지역구 예산'이라는 걸 들고와 부당한 거래를 요구하길래, '날 어떻게 보느냐'며 화를 내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요즘 초선들은 '지역구 예산'이라고 하면 물불을 안 가리고 다 받아 챙긴다. 그러면 곤란하다. 물론 나도 선수(選數)가 쌓이면서 적당히 타협하고 물들었지만…. 그리고 좋은 것 있으면 '나눠 먹어야 한다'. 욕심부리면 체한다."

―사상은 진보적이면서도 늘 타협을 강조해왔다.

"진보건 보수건 타협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난 개인적으로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 입장이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분이 많아서 국보법 개정으로 타협하려 했다. 그러나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개정도 못 했다. 국회도 마찬가지지만 극단적 주장보다는 타협으로 조금씩 바꿔 가야 한다."

―요즘은 정치가 갈등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 공동체가 언제부터인지 지역·계층별 이익만 중시하다 보니 극단적 대립과 갈등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면, 영남권 신공항 문제에서 가덕도와 밀양을 두고 소지역주의가 나타나는데,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정답을 알면서도 지역 여론이 무서워 말을 못 한다. 용기가 없다. 욕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정치 발전 측면에서 아쉬웠던 점은.

"현행 소선구제에서는 서로 생각이 달라도 당선을 위해 같은 당에 있어야 한다. 우리 당만 해도 소위 '비노(非盧)'들은 '친노(親盧)'와 성향이 많이 다르다. 중대선거구제와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이 정해지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도입되면 이런 사람들이 굳이 함께 당에 있을 이유가 없다. 새누리당에서도 친박(親朴)과 유승민 의원 같은 사람들은 다른 당을 해야 정상 아닌가. 유럽처럼 극우, 중도 보수, 중도 진보, 극좌 이렇게 4개 정도의 정당이 경쟁하는 구도로 가야 한다."

―노무현 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냈는데 이른바 '친노'에 대해서 평가한다면.

"솔직히 이제 더민주에 친노는 10여명도 안 될 텐데…(웃음). 총선 이후 '친(親)문재인'으로 당 중심 세력이 재편됐다. 친노의 열정과 순수한 에너지는 분명 긍정적인 힘이었다. 그러나 일부가 열성 지지층과 SNS 정치에 중독되면서 말이 점점 거칠어지고 정치를 천박하게 만들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받기 위해 더 험한 말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어느덧 정당에서 중요한 위치와 영향력을 갖게 됐다. '싸가지' 없게 말하면 인기가 오르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웃음). 나는 팟캐스트니 뭐니, 무슨 팬클럽이니 하는 사람들과는 적응이 잘 안 된다."

―노무현 정부 때를 돌아보면 아쉬웠던 게 있나.

"돌이켜보면 그때 경제·안보 등이 수치상으로 보더라도 안정적인 시대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국정원과 검찰 개혁 등 획기적인 일들을 많이 했다. 다만 대통령이 조금 거친 표현을 삼가고 불안한 요소를 줄였다면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 원고대로만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한번 말씀을 하시면 2시간을 넘겼으니…."

―현재 더민주에선 문재인 전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로 유력하다고들 보는데.

"그건 알 수 없다. 대세론은 없다. 이번 총선 때 여러 이유로 문 전 대표는 호남에서 실패했고, 본인이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더민주는 내년 봄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지지율이 높아지면 그 사람이 후보가 되는 것이다."

―최근 문 전 대표를 만났다고 들었다.

"새 당대표 선출 문제 등을 상의했다. 호남 출신에 경제에 대한 식견도 있는 정세균 의원이 당대표가 됐으면 하는 뜻을 문 전 대표에게 전했는데, 문 전 대표는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문제'라고 답하더라."

―기자들에게 '짐승'이라고 하면서도 언론과 꾸준히 소통을 했다.

"분명히 쓰지 말라고 한 이야기들도 기자들은 기사로 쓰는데, 그게 사람이 할 도리냐(웃음). 그래도 정치가 국민과 소통하는 창구가 언론인데, 그 존재를 부정해선 안 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언론이 밉더라도 자주 만나야 국민과 정치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그는 청와대 정무수석 때 기자들과 당구를 치기도 했다)."

―앞으로 계획은.

"원외(院外) 정치인이 뭘…. 국회에 나가지 않지만 정당에서는 보이지 않게 뒤에서 조정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그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3選 유인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유인태(서울 도봉을) 의원은 14·17·19대 국회에서 3선(選)을 하고 노무현 정부 초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국회에서는 사형제 폐지 법안을 꾸준히 발의해왔다. 야당에서는 문희상·정세균·원혜영 의원 등과 함께 주류(主流) 중진으로 활동했고, 여야 간 대화가 막힐 때 막후 조정 역할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