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주부 조성은(35·가명)씨는 최근 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 등 모든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계정을 닫았다. 네 살배기 딸과 미국 뉴욕 가족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올렸더니 '누구 딸은 금수저라 팔자 좋네' '아빠 닮아서 얼굴은 별로다' 같은 댓글들이 달렸기 때문이다. 조씨는 "딸을 낳고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재미에 SNS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딸이 자라서 이런 악성 댓글을 볼 생각을 하니 섬뜩해졌다"며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SNS 계정을 다시 열 생각이 없다"고 했다.

SNS를 통해 원치 않는 사람에게까지 개인 정보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경우가 늘자 SNS 활동을 그만두는 'SNS 은둔(隱遁)족'이 늘어나고 있다. 본지가 SNS를 이용해본 적이 있는 20~30대 15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최근 3년 이내에 SNS를 닫은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이 70%를 넘었다. "현재 SNS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자의 31%는 "앞으로 다시 SNS를 사용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SNS 은둔족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미권에선 조씨처럼 자녀의 신상 노출을 걱정해 SNS 활동을 접는 부모를 뜻하는 '하이드런츠(hide와 parents의 합성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사생활을 무차별적으로 침해하는 SNS로 인한 스트레스가 전 세계로 퍼져 있는 것이다.

프랑스 국가헌병대(경찰)는 지난 2월 "SNS에 떠도는 아이의 신상 정보나 노출 사진이 아동을 노리는 변태 성애(性愛)자들의 범죄 표적이 되기 쉽다"며 "자녀 사진을 SNS에 함부로 올리지 말라"고 경고했다. 프랑스에서 자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자녀 사진을 SNS에 올리는 부모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4만5000유로(약 6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SNS를 탈퇴하는 것은 개인 차원의 소극적인 의사표시다. 유럽·일본 등 선진국은 국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SNS 스트레스 대처법을 인정하고 있다. 과거 자신이 인터넷이나 SNS에 올린 게시물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스페인 변호사 마리오 코스테하 곤살레스는 지난 2009년 "구글 검색창에 내 이름을 검색하면 빚 때문에 집을 경매에 내놓았다는 신문기사가 나온다"며 구글에 관련 기사 링크를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구글이 이를 거부하자 그는 "해당 사건이 해결됐는데도 기사가 계속 검색되는 것은 인권 침해"라며 소송을 냈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2014년 5월 "검색 결과 가운데 시효가 지났거나 부적절한 개인 데이터는 이용자가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며 곤살레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4개월 동안 유럽에서만 구글을 상대로 14만건이 넘는 삭제 요청이 접수됐고, 구글은 이 중 42%를 삭제했다. 당시 삭제된 게시물 중 상당수가 페이스북 같은 SNS에 올라 있었다.

일본에서도 최근 잊힐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일본 사이타마 지방법원은 작년 12월 원조 교제를 한 남성이 "내가 체포됐다는 인터넷 기사와 게시물을 삭제해달라"고 한 요청을 받아들여 구글에 삭제를 명령했다. 미국 최대 주(州)인 캘리포니아주는 지난해부터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구글·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에 자신에 관한 기록을 지워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는 걸음마 단계다. 지난 4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정한 '한국판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은 자신이 올린 글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가려놓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 가이드라인은 이용자 본인이 올린 게시물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제3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반쪽짜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