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야드(약 125m)짜리 파3 홀. 주말 골퍼들도 9번 아이언이나 웨지로 도전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악명 높은 파3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12일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막을 올린 미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비치 TPC 소그래스의 17번홀 얘기다. 이 홀은 사방이 워터해저드로 에워싸인 아일랜드 홀로 제5의 메이저 대회로 불리는 이 대회의 상징이다.

여기가 바로 블랙홀 - 마스터스에‘아멘 코너’가 있다면 PGA 제5의 메이저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는 17번 파3홀이 있다. 주변이 온통 워터 해저드로 둘러싸인 이 홀은 공을 잡아먹는‘블랙홀’이다. 12일 17번홀에서 티샷을 날리는 빌리 호셸(미국)의 모습. 마지막 홀 대신 명물 17번홀에 갤러리가 몰리는 것도 이 대회의 특징이다.

수치상으로 보면 지난해 PGA 투어에서 소그래스 17번홀보다 어려웠던 파3홀이 77개나 됐다. 하지만 이곳에선 '노시보(Nocebo) 효과'가 나타난다. 환자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는 약인데도 부작용을 알려주면 실제 부작용이 나타나는 현상을 뜻하는 말로, 위약효과(Placebo)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만큼 '17번 홀의 저주'에 허우적대는 선수가 끊이지 않는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지난 2005년 대회에서 나왔다. 밥 트웨이(미국)는 대회 3라운드 16번홀까지 4타 차 단독 선두였지만, 17번홀에서 티샷을 물에 4차례 빠뜨린 끝에 12번째 샷 만에 홀 아웃을 했다. 단독 선두였던 순위는 10위로 곤두박질 쳤고, 최종 56위까지 떨어졌다. '새가슴 골퍼들'로 인해 17번홀을 둘러싼 워터해저드는 그야말로 '물 반, 공 반'이다. 공식적인 집계가 시작된 2003년 이후 이 대회에 참여한 정상급 골퍼들이 빠뜨린 공만 598개에 달한다. 대회 주최 측은 "매년 17번홀 주변 물에서 찾아낸 공이 10만 개가 넘는다"고 밝혔다. 1년 10만 개면 하루 평균 273개씩 물에 빠진다는 얘기다. 지난 2002년 미겔 앙헬 히메네스(스페인) 이후 홀인원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고 있다.

(왼쪽 사진)1년에 10만개 넘게 건집니다 - 지난해 TPC 소그래스의 17번홀 워터해저드에서 다이버가 빠뜨린 공을 한 다발 건져 올리는 모습. (오른쪽 사진)잘못 신은건 아니죠? - 이래서 골프계의 아이돌로 불린다. 리키 파울러(미국)는 12일 오른쪽은 노랑, 왼쪽은 핑크인 신발을 신고 나왔다.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도 선수들은 17번홀에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144명 가운데 37명만 버디를 기록했고, 96명은 파로 홀을 마쳤다. 6명은 그린 대신 물속으로 샷을 했다. 5명이 보기를, 6명은 더블 보기를 기록했다. 17번홀 니어리스트(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티샷을 친 선수)는 71.12㎝에 붙인 안병훈(25)이었다. 17번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세계 1위 제이슨 데이(호주)가 9언더파 63타로 코스 레코드 타이기록을 세우며 단독 선두로 1라운드를 마쳤다. 세계 2위 조던 스피스(미국)와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나란히 공동 83위(이븐파)였다. 안병훈은 17번홀에서 버디를 기록했지만, 3오버파 125위로 1라운드를 마쳤다. 2011년 이 대회 우승자 최경주는 공동 103위(1오버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