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과학기술사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막 시작되던 1962년, 대한지질학회는 국가사업으로 태백산 지구에 대한 지질조사 활동을 벌였다. 이 사업에는 43명의 지질학 전문가가 참여했다. 지질학 전공 대학생들도 모조리 동원됐다. 목적은 지하자원, 즉 석탄과 석회암의 매장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몇 차례에 걸친 지질조사로 한반도 지질도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과학 발전의 계기는 조국의 근대화에 있었다.

'10억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의 필자 최덕근 교수가 지질학에 입문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는 지질학 중에서도 고생물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은 대학원 시절부터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까지 철저하게 한반도 지형의 형성 과정에 연구 초점을 두었다. 내가 나고 자란 땅에 관심이 가는 것은 지질학자로서 인지상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지난 40여 년 동안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꽃가루·삼엽충 등의 화석과 암석층을 관찰하고 채집·분류해 왔다. 이를 통해 수억 년 전 한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지형 변화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최덕근은 '한국' 과학자인가? 그는 일평생 한반도의 땅을 들여다보고 살았다. 다만 그의 고생물학 연구 결과는 조국이라는 말로 한정할 수 없는 범위로 확장되었다. 지구 상의 땅덩이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판'들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수억 년에 걸쳐 대륙의 모습이 조금씩 변했다.

현재 우리가 충청남도와 강원도로 알고 있는 지역은 오래전 중국 남부와 연결되어 있었다. 충주 월악산 부근의 석회암층은 7억 년 전 지구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가설을 확인해 준다.

한국의 지질학이 경제개발을 위해 동원되는 데에서 시작해 아시아·미국·유럽 등 세계 과학자들과 교류하는 글로벌 과학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놀랍고도 감동적이다. 이 책은 과학이 갖는 다양한 속성의 스펙트럼을 한 지질학 연구자의 시점을 통해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과학 지식은 우리가 현재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이렇듯 최전선의 과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자의적으로 그어 놓은 국경 안에 머무를 수 없다.